
지난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9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1심에서 금고 7년 6개월을 선고받은 운전자가 2심에서 금고 5년으로 감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부(부장 소병진·김용중·김지선)는 8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차모(69)씨에게 금고 7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이같이 선고했다. 금고란 수형자를 교도소에 가두어 두기만 하고 노역은 시키지 않는 형벌이다.
재판부는 차씨의 범죄에는 ‘상상적 경합’을 적용해야 하므로 ‘실체적 경합’을 적용한 1심 판단은 잘못됐다고 봤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가 여러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실체적 경합은 각각의 행위가 여러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를 뜻한다. 앞서 1심에서는 차씨의 행위를 여러 개로 쪼개 보행자들을 들이받아 다치게 한 행동과 BMW, 소나타 등 차량을 들이받아 운전자를 다치게 한 행동을 각각 다른 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과속페달을 제동페달로 오인해서 밟은 업무상 과실이 주된 원인”이라며 “피고인 차량이 인도를 침범해서 보행자들을 사망, 상해에 이르게 한 것과 승용차를 연쇄 충돌해서 운전자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것은 동일한 행위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보행자들을 들이받고 난 뒤 주변 차량을 들이받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2.4초에 불과한 점 등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1심은 금고형을 선택한 후 경합범을 가중해 금고 7년 6개월을 선고했으나, 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 상상적 경합 관계로 봐야 한다”며 “따라서 처단형은 금고 5년 이하”라고 했다.
'급발진' 주장 받아들이지 않아
법원은 그러면서 “법이 허용하는 처단형의 상한형을 선고하기로 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차씨에게 금고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고는 차씨의 업무상 과실로 9명이 사망하고 5명이 상해를 입는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일부 유족들에게 지급된 돈만으로는 피해가 온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여전히 4명의 사망자와 1명의 피해자 측과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 당심에 이르기까지 범행을 계속 부인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죄책이 상당히 엄중해 보인다”고 했다.
차씨는 항소심에서도 급발진 주장을 이어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제동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불가항력적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한다”며 “원심 판결에 사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해서 판결에 위험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항소이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앞서 차씨는 지난해 7월 1일 오후 9시 30분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제네시스 G80차량을 몰고 역주행하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이후 차씨는 급발진 사고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정밀 감정 결과 운전자 과실로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