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월도 절반이 지나갔다. 그러나 봄이 오는가 싶더니 곳곳에서 봄눈 소식이다. 봄눈이되 봄눈 녹듯이 이내 녹는다고는 하지만 눈이 많이 내렸고 또 쌓인 눈이 무거워서 걱정이다. 강원도에 사는 지인들이 보내온 사진을 보니 계곡과 숲과 절, 마당에 눈이 내려 발이 빠질 정도이다. 제주에는 그제 밤부터 비가 내렸다. 새벽에 일어나서 봄비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한라산을 바라보니 눈이 내려 봉우리가 온통 흰 빛이다. 그러나 이 봄눈의 시간은 머잖아 경과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봄볕의 시간, 춘광(春光)의 시간을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될 터이다.
춘광이라는 단어를 새삼 마음 가운데에 두게 된 것은 얼마 전 제주 한라산 오등선원에 들렀을 때의 일이 계기가 되었다. 오등선원에서 제용 스님을 뵈었더니 “이제 어느새 봄입니다. 이 봄에는 꽃 피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흐름도 함께 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처처에 꽃 피고 봄볕 가득해지는 것은 하나의 흐름이니, 바깥의 변화를 바라볼 때에 내 마음의 미묘한 흐름도 함께 관찰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되었다.
봄눈 쌓였지만 곧 봄볕의 시간
번뇌 끊겠다는 생각이 곧 번뇌
꽃이 필 수 있게 마음에 여백을

그런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스님 처소의 한쪽 벽에 걸린 한시에 우연히 눈이 갔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경허 스님의 ‘우음(偶吟)’이라는 제목의 시였다. 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당처(當處)엔 허공도 무너졌는데/ 공화(空花)엔 열매가 맺었네/ 알겠도다 이것도 봄빛이라/ 그윽한 향기가 내 방에 풍겨오네”
봄빛이라고 해석했지만, 스님의 시에는 춘광(春光)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시를 읽고 여러 날 여러 차례에 걸쳐 뜻을 헤아려보았으나 요량하기 어려웠다. 내 나름으로 억지스럽게 우겨서 생각하기를 ‘공화(空花)’는 허공꽃이라고 풀이를 하므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허공 중의 꽃이요, 다만 이름일 뿐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허공꽃이 핀 인연은 춘광을 만난 덕에 그렇게 된 것이며, 이처럼 무심하게 허공꽃을 바라볼 적에 텅 빈 내실(內室)과 마음의 공간에 그 향기가 밀려온다는 속뜻이 아닐까 홀로 궁리를 해보았다. 물론 경허 스님은 허공도 무너뜨려야 할 것이라고 일갈하셨지만. 그렇다면 결국엔 마음에 빈자리, 담담하고 적적(寂寂)한 자리를 두고 살라는 당부가 아닐까 싶었다.
경허 스님께서는 “모든 일에 무심하고 마음에 일이 없게 되면 마음 지혜가 자연히 깨끗하고 맑아진다”면서 “마음을 텅 비워서 성성하고 순일하게 하여 흔들리지 않고 혼미하지 않게 해서 허공같이 훤칠하게 하면 어느 곳에 생사가 있으며 어느 곳에 보리가 있으며 어느 곳에 선악이 있으며 어느 곳에 가지고 범할 게 있겠는가”라고 이르기도 하셨기 때문이었다.
이 시가 실려 있는 『경허집』을 더 펼쳐보니 “고요히 은거하는 것이 참으로 도의 으뜸이며/ 과일을 잘 익혀 향기롭게 하자면 뿌리를 가꾸어야 한다네/ 천 가지 새들이 나무에서 지저귀니 시를 잘 짓는 시인들 같고/ 온갖 풀이 바람에 누움이 성인의 도를 배운 듯하다”라고 노래한 시구도 감명이 깊었다.
고요한 은거와 담담함, 그리고 마음의 적적한 상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또 읽게 된 시가 있었다. 황청원 시인의 시 ‘그냥 꽃잎을 쓸다’였다. 이 시는 황청원 시인과 김양수 화가가 함께 펴낸 시화집 『달마가 웃더라 나를 보고』에 실려 있었다. 황청원 선생은 이렇게 읊었다.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마음 번뇌를 쓸어내고 있습니다/ 번뇌는 내버려두고 꽃잎을 쓸거라/ 다시 꽃잎 떨어질 빈자리 생길 수 있게”
짐작하자면, 절의 마당에 떨어진 봄날의 꽃잎들을 비로 쓸고 있는 제자와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스승이 주고받는 문답의 형식을 빌어서 쓴 시일 텐데, 읽고 나니 여백이 많으면서도 시의 무게가 매우 묵중했다. 이것이 번뇌요, 저것이 번뇌요, 아울러 반드시 끊어야 할 번뇌라고 생각하면 번뇌에 오히려 매이고 말 것이다. 경허 스님이 쓴 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번뇌라는 것도 공화(空花)에 다름 아닐 것이다. 번뇌는 허공꽃이니 그저 번뇌라고 이름할 뿐이다. 그보다는 떨어진 꽃잎을 쓸어서 꽃잎 떨어질 빈자리를 만들기나 하라는 스승의 훈계는 속박되는 것이 없고 또한 의미심장하다. 꽃잎 떨어질 그 빈자리가 곧 마음의 빈자리, 즉 조용하고 동요가 없고 순일하고 평온한 마음의 자리인 까닭이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일도,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봄의 현상과 흐름과 변화를 바라보는 일도 내 마음에 빈자리를 만들어 두고서 하라는 말씀일 테다.
봄눈이 요란스럽게 왔다는 소식이 내게 왔고, 나는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쌓인 봄눈은 곧 사라질 것이고, 내린 봄비는 화초의 싹을 더 많이 틔우고 새로이 꽃망울을 맺게 할 것이다. 봄의 일을 하는 사람이 저만치서 오는 게 보인다. 봄을 본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