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나바위성당 [한국의 아름다운 성당 50선㉖]

2025-03-19

나바위성당을 다시 찾은 건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다. 한옥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성당과 박물관을 둘러보는데, 젊은 남녀 한 쌍이 사랑스럽게 그 가운데 서 있어, 봄의 생동감이 더해진다.

나바위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선교구 3대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조선 교우와 함께 고국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8월 31일 라파엘호를 타고 일행과 한양을 향하여 떠났으나, 항해 도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다가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에 닿는다. 그곳에서 배를 정비하여 다시 북상하다가 1845년 10월 12일 밤 8시경, 강경에서 조금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닿게 된다.

이곳에 1882년 나바위공소가 설립되고 1897년에는 본당이 설정되었다. 초대 주임신부인 베르모렐 신부는 1907년 성전을 신축한다. 당시에는 목조건축으로 양쪽을 칸막이로 구분하여 남녀 신자가 따로 앉도록 하였다. 1916년 건물을 고치면서 일부분을 벽돌로 바꿨으며, 그 뒤 다시 2차례 더 수리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신사 참배 거부에 앞장섰으며, 6.25 전쟁 중에도 미사가 끊이지 않은 본당이었다고 한다. 정부는 한국 전통 양식과 서양 양식이 합쳐진 점에 주목하고, 성당 건물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여 1987년 사적 제318호로 지정하였다.

처음 방문은 오래전 서울에서 기차를 이용한 성지순례였다. 강경역에 내려 금강을 따라 성당까지 도보로 갔었다. 한참 후 친구들과 함께 토요일 저녁 미사에 참례하였다.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는 정겨웠고, 사제의 강론에 눈시울을 적시며 감동에 겨운 채 삼위일체대축일을 보냈었다. 미사 30분 전에는 예비종을 친다. 땡~~땡~~땡~~ 밧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며 직접 치는 청아한 종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성당 창문은 한옥에 어울리게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한지로 마감되었다. 한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화려함은 없지만 부드러움이 아름답기만 하다.

성당 뒤쪽 화산은 산이 아름답다고 해서 우암 송시열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화산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 넓은 바위가 있는데 나바위라 불리었다.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는 해마다 화산 정상의 나바위에서 연례 피정을 하셨다고 한다. 피정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베로모렐 신부는 1915년 정자를 지어드렸고, 드망즈 주교는 이 정자를 망금정(望錦亭)이라 이름하였다.

그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탑이 있다. 1955년에 나바위 착지 110주년, 시복 30주년, 나바위성당 건축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탑이다.

순례를 마칠 즈음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장관이 펼쳐진다. 일몰에 더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일몰 직전의 부드러운 햇살이 나바위성당과 우리 일행을 포근히 감싸주는 듯하다. 화산을 내려오며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서 그분과 같은 눈높이로 나바위성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저녁 노을빛 속에서, 감사함을 담은 기도로 하루를 마감해 본다.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전화 : 063-861-8182

주변 가볼 만한 곳 : 보석박물관, 미륵사지, 교도소세트장, 아가페정원, 고스락

홍덕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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