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락에 출몰해 협박장을 송부하고…무기를 가지고 위협한 후 금품을 강탈하거나 관헌에게 신고한 자는 전 가족을 참살하겠다고 권총을 보이며 위협…주민의 공포가 극심했다.”(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 17권)
협박과 폭행을 일삼는 흉악범의 범죄사실처럼 보이지만, 이는 일제가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 ‘혁신의회’의 제3구 모연대장 김성진(1879~1934년, 이명 김승국)의 군자금 모금활동을 묘사해 놓은 글이다.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작성한 문서가 근거가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처럼 독립운동을 범죄행위로 폄훼한 대목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이들을 일개 잡범처럼 취급, 독립의 의지를 꺾으려는 술책이기도 했다.
일본외무성특수조사문서는 김성진에 대해 “올해(1929년) 초가을부터 간도지방 일대에 걸쳐 불령선인이 출몰해 피해가 빈번함에…자칭 혁신의회 제3모연대장 김성진이 지휘한 일파 20명이 교묘히 경계망을 숨어…일거에 18명을 검거하고 현재 엄중 취조중”이라고 적었다. 불령선인(不逞鮮人)은 소요를 일으키는 조선인이란 뜻으로, 일제가 독립운동가에 대한 멸칭처럼 쓰곤 했다.
사실 일제가 극악한 범죄자로 몰아가는 건 그만큼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방증이었다. 김성진은 1919년 중국 옌진에서 ‘대동단’ 중부회 신문계 및 비서로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다. 1920년에는 ‘대한국민회’ 총무서무부장으로 활동했다. 일제조차 대한국민회에 대해 “조직이 정돈됐고, 세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기부금 모집방법도 다른 단체처럼 압제적 횡포를 드러내지 않고, 단원의 수는 1000여명을 헤아린다”고 설명했다.
이후 ‘광복단’과 ‘신민부’ 등에서 활동한 그는 1921년 혁신의회에서 모연대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군자금 모집에 나섰지만, 1929년 12월 11일 룽징에서 검거됐다.

일제는 그를 강도 혐의로 기소했다. 김성진이 ‘강도질’로 강탈한 돈은 약 1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채 20원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성진은 지금으로 치면 1억원이 훌쩍 넘는 거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은 셈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공판 과정에서도 당당하게 응했다. 조선일보는 그가 “신민부 김좌진의 부하”라고 보도했는데, 못지 않은 기상을 보인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1930년 9월 1일 청진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나타난 그는 “늙은 몸으로 해외 풍상을 얼마나 겪었는지 쇠잔한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득했는데 자못 엄연한 태도로 심문에 응했다”고 돼 있다.(동아일보 보도)
이에 따르면 그는 간도에 간 목적을 묻는 질문에 “조선이 일본에 합방된 뒤 간도에 이민을 많이 해 산업을 장려하고 학교를 설립해 자제를 교육해 이천만 동포의 누명을 벗기려고 갔다”고 답했다. 또 서른살에 간도에 갔다면서 “20세부터 23세까지 군인을 다녔다”고 스스로 소개하기도 했다. ‘일·한 합방에 불평을 품고 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망설임 없이 “그렇소”라고 답했다.
그는 모든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일제가 씌운 강도 혐의가 아니라 강제병합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음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다. 하지만 판결문은 “피고인은 중국으로 이주한 이래 조선 독립을 몽상(夢想)하고 양민으로부터 자금 모집 등에 노력한 자”라고 이를 폄훼했다.
김성진은 10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옥중 순국했다. 일제는 이를 ‘병사’로만 기록했다.
1920년 ‘대한민국정부 충남지부 특파원’이 돼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나선 유창렬(1894년 12월생)은 일제에 의해 공갈미수 등 혐의로 기소됐다.
판결문은 그에 대해 “예전부터 조선 독립을 희망하던 자로…‘애국 사상을 가진 조선인 동포는 마땅히 자금을 내어놓으라. 응하지 않으면 (임시정부 판결로)사형을 집행하겠다’고 적힌 문서를 만들어 공갈을 시도했다”고 표현했다. 유창렬이 “상해임시정부원으로 칭하며 금원을 편취하려 했으나 그 전에 경찰관에 잡혀 징수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주지법은 그에게 공갈미수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 유창렬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일제는 독립자금 모금 활동을 범죄행위로 몰아 실형을 선고하는 데 활용한 셈이다.
특별취재팀=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