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한국 멕시코서 3경기... 고산지대 스포츠의 과학

2025-12-08

홍명보 감독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을 "멕시코 월드컵"이라고 칭했다. 조별리그 세 경기가 모두 멕시코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내년 3월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오는 유럽팀과의 1차전, 개최국 멕시코와 2차전은 과달라하라(약 1500m)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조별리그 최종전은 몬테레이(약 540m)에서 열린다. 산에서 시작하지만, 마지막 승부는 평지에서 열린다. 아찔한 표고 차는 홍명보호에 기회가 될 수 있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 때 박종환 감독은 감기 걸렸을 때 쓰는 일반 마스크를 쓰고 훈련했다. 과학적 장비가 부족했던 시절, 산소가 희박한 멕시코 고지대에서 열리는 경기에 대비하려는 궁여지책이었다. 이런 정성 덕분인지, 한국은 4강 신화를 작성했다. 실제로 고지대는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뉴욕타임스의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은 8일(한국시간) '2026 월드컵 고도의 충격'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멕시코에서 열리는 경기에서 고도 적응이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홈팀 멕시코는 조별리그를 모두 고지대에서 치른다. 두 경기는 멕시코시티(2200m)에서 펼치며 과달라하라에서 한국을 상대한다. 몬테레이를 쏙 빼놓으면서 고지대 홈경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됐다. 멕시코는 멕시코시티 인근의 '고성능훈련센터(Centro de Alto Rendimiento)'에서 월드컵에 대비한다. 이곳의 해발 고도는 2600m. 멕시코시티에서도 좀 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기압이 떨어진다. 질소와 이산화탄소 감소는 상관없지만 산소가 줄어들면서 지구력과 유산소 능력이 떨어진다. 피로 물질은 더 쌓인다. 디 애슬레틱은 "한 경기에 9~10㎞ 정도 뛰는 미드필더의 경우 고지대에서는 저강도 러닝이 10%, 고강도 러닝이 30%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볼리비아 대표팀의 전 국가대표 마르코 에체베리는 "고지대에서도 뛸 수 없는 건 아니다. 회복이 느린 게 문제다. 30m 전력 질주 후 크로스를 올릴 수 있지만, 다시 숨을 고를 때가 진짜 힘들다"고 고지대의 어려움을 회고했다.

저지대 훈련 후 경기 때만 고지대를 방문해 경기를 하는 '회피 전략'을 시도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지대에 도착해 산소를 마시면 곧바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생리적 영향이 시작됐다. 디 애슬레틱은 "고지대 적응 기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5~7일 정도의 적응 기간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올 때도 컨디션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남아공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이 바로 이런 경우다. 디 애슬레틱은 "신체 여러 과정이 해수면 수준으로 복귀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며 "특화된 식단과 영양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남아공은 1차전에서 멕시코시티에서 멕시코를 상대한 뒤, 유럽 PO 진출팀과의 2차전은 미국 애틀랜타(약 320m)에서 치른 뒤 한국과 경기를 위해 다시 국경을 넘는다.

한국은 이미 고지대 경기에 다양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선수로 참여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사령탑으로 16강 진출을 이끈 허정무 전 감독은 "평지에선 90분을 거뜬히 뛰는 선수도 고지대에서는 60분 만에 극심하게 지친다. 고지대에서는 공도 빨라진다. 골키퍼들이 당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때는 1750m 고지대 요하네스버그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했다. 이에 대비해 파주 트레이닝센터에 산소방을 설치하고, 훈련 캠프를 루스텐버그(약 1250m)에 차렸다. 산소량을 조절할 수 있는 특수 마스크도 활용했다. 허 감독은 "이번엔 고도 문제가 더 중요해졌지만 이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훈련 일정과 장소를 신중하게 선택해하고 조절해야 한다. 스포츠 과학과 장비는 그때보다 더 발전했다. 큰 경기에 대한 선수들의 경험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고 홍명보호의 선전을 기대했다.

박종환의 '젊은 붉은 악마'는 42년 전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패했다. 그러나 개최국 멕시코를 상대로 고지대 멕시코시티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면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첫 경기 유럽에 이어 홈팀 멕시코를 상대하는 일정이 이번 북중미 월드컵과 똑같다. 준비에 성공하면 고지대라는 '걸림돌'이 돌풍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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