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는 지난 9~10월 독일·대만·일본의 비급여 의료 관리 실태를 취재했다. 세 나라 의사들은 비급여 관리 방식뿐 아니라 한국의 의대 증원 사태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세 나라는 공통적으로 보험료를 걷어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 제도를 갖고 있다.
양한추안 대만의원협회(한국의 병원협회와 의사협회를 합한 조직) 명예이사장은 협회 사무실에서 한국의 2000명 증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양 명예이사장은 대만 위생복리부(보건복지부) 부서장을 지냈고 대만 전국민 건보를 설계했다.
그는 먼저 "굉장히 의문스러운 게 왜 한번에 2000명을 늘리려고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만 의대 정원은 1990년대 초 1000명, 지금은 1300명"이라며 "위생서(지금의 위생복리부) 부서장으로 재직할 때 의대 증원 요청을 거의 다 거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증가하면 건보 재정 지출이 당연히 늘기 때문에 통제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리우이창 타이베이보훈종합병원 부원장(국립양명교통대학 교수, 내과의사)은 의대 증원의 세 가지 원칙을 내놨다. 그는 "건보 지출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늘리고, 전체 숫자 증가보다 진료 과목별로 엄격히 관리해야 특정 진료 과목의 의사 부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 3~10년 의무적으로 근무할 의사를 양성하는 국비 유학생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 부원장도 국비 유학생 출신이다. 국비 유학생 출신 지역 의사의 소득이 공립병원 의사보다 33% 높다. 또 큰 병원이 의사를 파견해 작은 지역병원을 돕는다.
리차드 우 대만사립병원협회 비서장(이사장)은 "대만도 비급여가 많은 안과·성형외과 등으로 의사가 몰린다. 외과 같은 데에 의사가 부족하다"면서 "그러나 수가를 높여서 해결할 문제이지 의대 정원을 늘릴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대만은 총액계약제(건보 총액 증가율을 정하고 정부와 의료기관이 계약하는 강력한 통제 제도), 비급여 가격 통제 등이 의사 입장에선 한국보다 불리하다. 리 부원장은 "대만 의사는 사회적 지위가 한국·일본처럼 높다. (그리 인정해 주는) 이유는 도덕적 의무 때문이다. 의대생 시절에 '졸업해서 돈 벌어도 상관없다. 다만 사회적 존중이 소득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라. 의사라는 직업이 돈 때문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라'고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적인 이익 때문에 밖에 나가 항의 시위를 한다면 과연 시민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리 부원장은 "한국 의사의 소득이 대만보다 훨씬 높다. 소득이 특정 수준을 넘는 순간 자신의 이익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뭉치고 더 강하게 대응한다"고 덧붙였다.
양 명예이사장은 "의원급 의사 시위는 있었지만 2,3차 병원은 없다. 대형병원 파업에 누가 동의하겠느냐"고 말했다.
리차드 우 비서장은 "한국 상황을 보면 의사가 그런 용기를 내 정부에 대응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건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의사는 수입이 높다. 파업하면 사회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그리고 의사는 단결력이 약하다"며 "다만 나도 정부와 담판을 할 때가 많은데 한국의 지금 상황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대만에서는 1000~2000명의 의사가 수가 계약 때나 의약분업(1997년) 시행 때 시위를 한 적이 있지만 최근 10년에는 없었다고 한다.
재일교포 신경내과 의사인 신용문 이사장은 "일본의사회는 정부와 싸우지 않는다. 의사회가 정부에 요구는 하지만 스트라이크(파업)는 안 한다"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한국은 일본의 지역의사제 같은 제도를 왜 도입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고베의 개업의사 스기모토 이사오 원장은 "의대 증원 한다고 한국처럼 데모하는 일은 일본에서 있을 수 없다. 일본에선 의사 부족 감안해서 정부가 의사 늘리고 의료 보상도 같이 고려했다"며 "의대 증원 덕분에 비인기과 인력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독일 본의 정형외과 개업의사 문병진 원장은 "독일의 많은 의대생이 의사를 선택하는 가장 큰 동기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높은 소득을 기대하면서 의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독일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의사는 소득이 괜찮은 직업인 것은 맞지만, 한국처럼 고소득 직업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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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ㆍ정종훈ㆍ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