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이대로 두면 심장수술 멈춘다” 흉부외과 교수의 작심 발언

2025-05-20

"간호협회가 내놓은 전담간호사 분류 보셨습니까,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던가요?"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흉부외과 교수)은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뜸 이렇게 물었다.

간호사의 진료지원 업무 범위를 △호흡기 △소화기 △근골격 △순환기·심장혈관흉부 △소아청소년·신생아 △신경외과 △내과 △외과 △중환자·응급 △수술 △재택 등 11개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대한간호사협회(간협)의 요구를 언급한 것이다. 정 교수는 "순환기와 심장혈관흉부를 무리하게 묶은 것도 모자라 PA(Physician Assistant) 수요가 가장 높았던 산부인과와 비뇨의학과, 외상외과 등은 아예 빠져있다"며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권 챙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에 신물이 난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심장수술을 집도하는 흉부외과는 고질적인 의사 인력난으로 PA 의존도가 높았던 진료과로 꼽힌다. 간호계가 간호사들을 위한 단독법 제정을 추진할 때도 이례적으로 지지하며 힘을 보탰다. 음지에서 일하던 PA들이 제도권 내에서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법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그런데 간호법 시행을 한 달 남짓 앞두고 "부당한 제도가 흉부외과의 한 축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간협이 일명 PA로 불리는 전담간호사의 업무에 기존 체외순환사들의 업무를 '체외순환'을 포함하고, 교육 관리까지 맡겠다고 나선 것이 발단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체외순환사는 환자의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수술을 진행할 때 집도의와 한 팀으로 움직이며 혈액순환을 돕는 직군이다. 코로나19 시기에 수많은 국민을 살렸던 에크모(ECMO) 등 고위험 체외순환장비를 다루기에 고도의 의학·공학 지식을 요한다. 미국·일본 등 해외에선 국가 자격으로 관리하지만 국내에선 별도 규정이 없는 탓에 PA들과 마찬가지로 불법의 경계에 놓여있다. 흉부외과학회는 15년 전부터 이론(28시간) 및 1200시간의 실습 교육 후 자격시험을 통과한 체외순환사들에 한해 인증을 부여하며 인력관리를 해 왔다. 최소 4~5년이 걸리고, 3년마다 재교육을 받아야 자격이 유지된다. 정 교수는 “체외순환장비를 다루려면 환자의 혈역학 상태를 실시간 판단하고 복잡한 의공학 장치를 조작·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간호법 제정을 계기로 체외순환제도의 합법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간협의 제안을 보고 기가 찼다"고 말했다. 60년에 걸친 노력 끝에 간신히 숙련된 체외순환 인력을 궤도에 올려놨는데, 이달 중순께 간협이 공개한 PA 간호사 교육안에서 체외순환이 ‘심장혈관흉부 전담간호사’의 업무로 포함된 것을 보고 맥이 빠졌다는 얘기다. 해당 교육안은 200시간 남짓의 교육을 이수하면 기존 체외순환사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협은 오는 6월 4일까지 입법예고 중인 간호법 하위법령에서 전담간호사 교육을 총괄·관리하는 주체를 정부로 지정된 데 반발해 복지부 세종청사 앞에서 무기한 1인 시위에 나섰다.

정 교수는 "고도의 의학·공학적 전문 지식이 요구되고 환자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체외순환 영역을 간호협회가 단독으로 관할하겠다는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이대로는 인증된 체외순환 업무를 하는 간호 인력 역시 불법 논쟁과 법적 한계에 내몰려 체외순환사의 명맥이 끊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체외순환사는 264명이다. 그 중 178명이 학회가 운영하는 공식 교육과정과 시험 등을 거쳐 자격 인증을 받았다. 간호사가 아닌 의료기사도 60명가량 된다. 흉부외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는 간호법 시행 여파로 자칫 고난도 심장수술의 필수 인력인 체외순환사가 불법 논쟁과 법적 한계에 내몰려 명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다. 당장 다음달부터 심장수술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막으려면 정부가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간호법 하나로 의료체계의 근간이 흔들려서야 되겠느냐"며 “체외순환사는 환자의 생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전문성과 법적 보호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체외순환사의 제도화·특수화·전문화의 길이 사장될 경우 심장수술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 안전은 물론 고위험 업무와 법적 책임에 내몰릴 간호사들을 위해서라도 체외순환사들을 법제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