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 ‘나눔의집’이 법인 유보금으로 예치해둔 후원금을 후원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2부(부장 변지영·윤재남·노진영)는 지난달 24일 후원자 이모씨가 나눔의집을 상대로 낸 후원금 반환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나눔의집이 이씨에게 155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원고(이씨)는 자신의 후원금 대부분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 복지, 증언 활동 등에 사용될 것이라 믿고 후원 계약 체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나눔의집)의 주장과 같이 후원금을 유용하거나 유용할 계획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후원금을 법인에 유보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원고를 비롯한 평균적인 후원자가 대부분의 후원금이 법인에 유보돼 있다는 등의 사정을 알았더라면 이 사건 후원계약 체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고의 착오가 중대한 과실에 기한 것이라는 점에 관한 피고의 주장·입증이 없는 이상 원고는 착오를 이유로 이 사건 후원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위안부 할머니 기부금 및 후원금 반환소송대책 모임’이 2020년 5월 나눔의집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유용 논란이 불거지자 같은 해 6~8월 두 차례에 걸쳐 제기한 반환 청구 소송 중 하나다. 당시 후원자들은 약 9000만원 상당의 후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나눔의집은 수년간 모은 후원금을 위안부 피해자 지원 대신 향후 노인요양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법인 유보금으로 쌓아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피해 할머니들이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등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후원자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에서 “피고가 표시하고 원고가 인식했던 후원 계약의 목적과 실제 후원금 사용 현황 사이에는 착오로 평가할 만한 정도의 불일치가 존재한다”며 “원고가 이러한 착오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후원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법 제109조는 ‘의사표시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후원금이 위안부 피해자 관련 활동에 사용될 것이라는 인식은 단순한 동기에 머무르지 않고 계약 내용의 중요한 부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소송은 처음 23명의 후원자가 함께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하자 이씨만이 항소를 이어가 최종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한편, 나눔의집과 별도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정의기억연대의 전신) 및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전 의원을 상대로 한 후원금 반환 소송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올해 1월 정대협과 윤 전 의원 측에 “후원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으나, 윤 전 의원 측이 이의신청을 제기하면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