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면 매일 ‘똑같은 어제’가 온다···훔치고 유혹하고 죽어도 봤는데, 이제 어떡하지?

2026-01-02

<사랑의 블랙홀> ㅣ쿠팡플레이·유플러스모바일TV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달력 한 장 바뀌었을 뿐인데, 해가 바뀔 때마다 다시 출발선에 선 기분이 듭니다. 또 한 번의 1년이 시작된 새해 첫 주말, 일상과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빌 머레이 주연의 1993년작 <사랑의 블랙홀> 입니다.

199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 걸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같은 시간이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를 지닌 ‘타임 루프’물의 원조 격인 작품입니다. 요즘은 ‘반복되는 시간에 갇힌 주인공’의 이야기가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꽤 신선한 설정이었습니다. 로맨스 코미디의 외피를 두른 채 삶에 대한 철학과 감동, 웃음을 함께 엮어내며 타임 루프 장르의 공식을 완성한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지역 방송국의 기상 캐스터인 필 코너스(빌 머레이)는 매년 2월 2일 열리는 ‘성촉절’ 행사 취재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 펑추토니로 향합니다. 반복되는 이 출장길이 지긋지긋한 그는 취재에는 시큰둥하고, 함께 온 프로듀서 리타(앤디 맥도웰)와 카메라맨 래리(크리스 엘리어트)에게 투덜대기 일쑤입니다. 서둘러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필, 하지만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폭설로 팀원들과 마을에 하루 더 머물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필은 묘한 기시감을 느낍니다. 라디오에서 전날 아침 들었던 멘트와 노래가 똑같이 흘러나오고 있었거든요. 거리로 나서자 이상함은 더 분명해집니다. 어제와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사건이 같은 순서로 반복됩니다.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정확한 하루의 재현. 몇 번의 아침을 더 맞고 나서 필은 깨닫습니다. 자신이 2월 2일이라는 하루에 갇혀버렸다는 것을요. 잠들어도, 술에 취해도,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성촉절 아침입니다.

시간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 필은 특유의 악동 기질을 발휘해 축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내일이 오지 않는 하루라면 책임질 필요도, 후회할 일도 없기 때문이죠. 음주운전에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고, 현금 수송차에서 돈을 훔치고, 처음 만난 여성에게 동창인 척 접근해 유혹하기도 합니다. 같은 시험을 원하는 만큼 반복하며 정답을 다시 쓸 수 있다니, 이보다 신나는 상황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필에게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프로듀서 리타의 마음을 얻는 것, 그리고 죽음을 막는 일입니다. 그는 온갖 방법으로 리타를 공략하지만 돌아오는 건 번번이 뺨 세례뿐입니다. 그 두 가지를 제외하면 완벽해 보이던 필의 하루하루는 어느 순간부터 쾌락이 아닌 공허로 변합니다. 그리고 필은 어떠한 계기로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하루를 채우는 방식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위기를 막고, 피아노와 얼음 조각 같은 기술을 익혀 마을의 유명인사가 됩니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웁니다. 냉소로 가득했던 이전의 필에게는 없던 모습이죠. 반복되는 하루는 여전히 같지만, 그 안에서 필이 살아가는 방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과연 필은 내일을 맞을 수 있을까요?

<사랑의 블랙홀>은 시간의 반복이라는 설정을 단순한 판타지 장치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며 일상의 소중함과 자기 성찰, 사랑의 의미를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로맨스와 코미디, 인문학적 철학까지 담아내며 이후 수많은 타임루프 영화의 교본이 됐습니다.

한국 개봉 당시 제목이 <사랑의 블랙홀>로 정해진 사연도 흥미롭습니다. 원제인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는 2월 2일 성촉절로, 마멋이 굴 밖으로 나와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지로 겨울이 더 이어질지 예측하는 미국의 전통적인 민속 행사를 뜻합니다. 그대로 번역했다면 낯설었을 법하죠. 당시 브라질 개봉명인 <더 블랙홀 오브 러브>(The Black Hole of Love)를 그대로 가져와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낭만적인 제목이 탄생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크고 작은 반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출근길, 익숙한 얼굴들, 비슷한 하루. 그러나 그 안에서도 선택은 존재합니다. 무심히 지나칠 것인지,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관계를 외면할 것인지, 손을 내밀 것인지.

새해를 맞아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아주 작은 선택 하나쯤은 다르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인생을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를 대하는 태도라는 걸 웃으면 깨닫게 하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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