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간 컴퓨터로 본 미래

2024-12-29

매일 사용해서 익숙한 PC와 스마트폰을 바라보면 변화의 속도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잠시 시간을 되돌아보면 기술의 진화가 얼마나 놀랍고 극적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1975년에 처음 등장한 PC의 무게는 22kg였으며 가격은 1300만원에 달했다. 1988년 국내에서 처음 판매된 휴대폰은 무거워서 '벽돌폰'이라 불렸으며 가격은 460만원으로 당시 포니 자동차와 비슷했다. 초기의 PC와 휴대폰을 보고 지금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PC와 모바일 혁명의 시간을 지나면서 20억개가 넘는 인터넷 웹사이트가 만들어졌고 우리는 매년 수백억회를 상회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화면을 통해서 디지털 세상과 연결되었다. CRT 모니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고 키보드로 도스 명령어를 두드리던 시절부터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는 지금까지 우리는 마치 창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들여다보듯 작은 직사각형 화면을 통해 디지털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 창문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디지털로 연결되는 공간컴퓨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마우스와 키보드로 컴퓨터와 상호작용하고 화면을 누르는 터치의 시대를 넘어, 이제 우리의 시선과 움직임, 목소리가 디지털 세상과 교감하는 매개체가 된다. 인간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3차원 공간에서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하도록 진화해 왔다. 평면 디스플레이를 통한 정보 전달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선택된 방식이며 공간 컴퓨팅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인간의 본능적 인지 방식에 최적화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제시한다

이 모든 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애플의 공간컴퓨터인 비전프로(Vision Pro)를 착용하면 내 시선은 마우스의 움직임이 되고 내 손가락 동작은 클릭이 되며 나의 음성은 프롬프트(Prompt)가 된다. 초거대 인공지능(AI)이 연동된 AI 에이전트(Agent) '시리(Siri)'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진정한 비서가 된다. 이제 우리는 건축가가 허공에 손짓으로 건물을 설계하고, 의사가 환자의 장기를 실제 크기로 공중에 띄워 수술을 계획하며, 학생들이 고대 로마의 거리를 거닐며 역사를 배우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AI 에이전트는 더 이상 채팅 창 속의 문자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 눈앞에서 실제 대화 상대처럼 나타나며 상호작용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혁명이 연결과 효율에 초점을 맞췄다면, 공간 컴퓨팅이 가져올 혁신의 핵심은 경험, 공간, 그리고 지능이다. 공간컴퓨팅 시대에 정보는 이제 더 이상 추상적인 데이터가 아니라, 만지고 조작할 수 있는 실체가 되며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 된다. 지능은 이를 개인화하고 맥락에 맞게 해석해, 인간과 기술이 더욱 자연스럽고 직관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공간컴퓨팅을 통해 디지털과 물리적 현실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모든 공간은 지능이 결합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캔버스가 될 것이다.

화면 중심의 컴퓨팅 방식이 최선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간 본연의 본질에서 출발해보면 미래 컴퓨팅의 진화 방향은 분명하다. 공간 컴퓨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지 방식에 가장 적합한 컴퓨팅 패러다임이며, 이는 수많은 혁신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한 새로운 미래다. PC혁명 시대에는 웹사이트가, 모바일 혁명의 시대에는 앱이 만들어지며 우리의 삶을 바꾸었다. 공간컴퓨팅 시대에는 수많은 '공간 앱(Spatial App)'과 'AI 에이전트'들이 만들어지고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이글을 쓰며 착용하고 있던 공간컴퓨터 비전프로를 내려놓으며 생각해 본다. “시간이 흘러 익숙해진 공간컴퓨터를 보며 다시 오늘을 회상할 날이 오지 않을까?”

이승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seunghwan.lee@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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