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성별에 따른 인칭 대명사를 이메일 서명이나 약력에 쓴 기자에는 응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9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자기소개에 자신이 선호하는 성별 인칭 대명사를 쓰는 기자는 생물학적 현실이나 진실에 분명히 관심이 없으므로 정직한 기사를 쓴다고 신뢰할 수 없다”며 이런 기자들과는 교류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만 백악관은 이 방침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행됐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으며, 공보실 소속이 아닌 백악관 직원들과 기자들 사이의 서신에도 적용되는지 여부 등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메일 서명에 자신이 원하는 대명사를 썼다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당하는 등 이 방침에 이미 영향을 받은 기자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자사 기자 세 명이 이메일에 생물학적인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대명사를 기재했다는 이유로 백악관으로부터 회신을 거부당했다고 보도했다. 정치 매체 크룩트 미디어(Crooked Media) 소속 기자 맷 버그는 실험삼아 여러 대명사를 나열해 트럼프 행정부 대변인에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메일을 통해서나 사람과 대면할 때 자신이 선택한 대명사를 표현하는 것은 최근 몇 년간 트랜스젠더 또는 논바이너리(생물학적 이분법적 구분을 벗어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체적으로 규정하는 사람) 공동체를 향해 지지를 표명하고 잘못된 젠더화를 방지하는 방법으로 여러 업계에서 일반화됐다. 그러나 공화당 정치인들을 이 관행을 격렬하게 거부해왔으며, 그들 중 일부는 학교에서 대명사 변경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하거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조롱하기도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출범 이후 반(反) 트랜스젠더 정책을 잇달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 두 개의 성별만을 인정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 정부기관은 ‘젠더’(gender·성 정체성)가 아닌 ‘섹스’(sex·성별)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고, 여권 등 공식 서류에 남성과 여성 외 제3의 성별 정체성을 기재할 수 있도록 한 선택지를 삭제했다.
지난달에는 미 텍사스주(州)의 한 공무원이 이메일 대명사를 삭제하라는 조직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됐는데, 텍사스주 그레그 애벗 주지사(공화당)와 정부효율부(DOGE) 수장 일론 머스크가 이 해고 결정에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미 공군은 최근 이메일 서명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식 홈페이지 등에서 ‘선호 대명사’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러한 지침이 2024년 국방수권법 조항을 위반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10일(현지시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