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파리

2025-12-03

조선대학교 치과병원 예방치과를 개소한 지 세 달이 흘렀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진료 시스템을 하나씩 정비해 가다 보니, 어느덧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진료실 개설과 대학의 학사 일정이 동시에 시작되면서 요즘의 하루하루는 숨 돌릴 틈 없이 지나갑니다. 밤이나 주말에라도 미뤄둔 일들을 해보려 하지만, 이제 백 일을 갓 넘긴 둘째 아이와 가족을 돌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네 살 구간을 돌파하고 있는 첫째 아이 체력을 채 감당하지 못하고 그로기에 빠지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간 일정 중 드물게 생기는 짧은 빈틈에는 신임교원 의무교육을 듣고, 다시 강의 준비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매주 완벽히 준비되지 못한 강의 자료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갈 때면,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다음 주엔 꼭 더 일찍 준비해야겠다며 다짐하지만, 여지없이 강의 전날 새벽이 되어서야 준비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보내주는 관심 어린 질문과 반짝이는 눈빛에 어떻게든 보답하고자 바둥대고 있습니다.

수련을 받고 전임의사로 지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역할은 확실히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다가오는 변화는 ‘진료과 과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입니다. 과장을 맡을 만한 그릇인가 스스로 되묻게 되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옵니다. 그러나 예방치과 소속 전문의가 저 혼자뿐이기에, 자연스럽게 과장회의에 참여하게 되었고, 덕분에 각과 교수님들의 깊이 있는 고민과 통찰을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회의에 참석할 때면 선배 교수님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배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회의 자료 속에서 유독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는 항목이 있습니다. 바로 한 달 진료 성적표입니다.

물론 진료과마다 진료 내용도, 인력 구성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진료과의 성적이 마치 커다란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는 독수리 같다 하면, 예방치과의 성적은 그 앞에서 파리의 작은 날갯짓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직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도, 지금 당장 무엇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가끔 현실보다 앞서나갑니다. 체어타임을 줄이고 환자를 조금 더 본다 한들, 그 파리의 날개가 독수리, 아니 참새의 날개만큼이라도 커질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예방치과의 진료과목 특성상 하루 동안 수행할 수 있는 진료량과 진료 수가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부질없는 고민에 사로잡힐 때마다, ‘치과병원은 모든 진료과가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시는 선배 교수님들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또 예방치과를 새롭게 접하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예방적 관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예방치과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날갯짓을 계속합니다. 하찮은 날갯짓일지언정 의미 있는 바람을 만들어낼 날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큰 바람이 아니더라도, 여름 날 선풍기의 ‘수면풍’과 같은 바람으로 존재하고자 합니다. 대장 파리로서 당당하게 회의에 참석하고, 더 많은 파리들과 함께 신나게 날갯짓하는 미래를 그려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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