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 떡 ≠뭐냐고? = 맛있다!

2025-01-25

두 장의 식빵 사이에 인절미를 채운 뒤 포개어 노릇하게 굽는다.

여기에 콩가루, 꿀, 아몬드 플레이크를 뿌리면 카페 못지않은 ‘인절미 토스트’를 만들 수 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마감을 앞두고 마주하는 텅 빈 워드 파일은 아찔함과 막막함을 느끼게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나만의 필드이기도 하다. 내 머릿속에서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생각을 글자와 문단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지금이야 모든 글을 거의 키보드로 쓰기 때문에 워드라는 프로그램명을 쓰지만, 원래 흔히 쓰이는 관용어구는 ‘○○의 캔버스’다.

다재다능한 범용성을 지니고 있어 어떤 창의성이든 불어넣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존재를 누군가를 위한 캔버스라고 부른다. 요리사의 영역에서 예시로 들 수 있는 요소는 닭고기다. 염지해서 튀기면 프라이드 치킨, 대파와 함께 푹 고면 닭곰탕, 토막 내 간장 양념에 졸이면 찜닭. 중국에는 간장과 술, 참기름을 한 컵씩 넣어 만든다고 하는 요리 산베이지, 즉 ‘3잔의 닭고기’가 있고 프랑스에서는 닭가슴살에 부드러운 무스를 채워 치킨무슬린을 만든다.

말하자면 깊은 맛이 있지만 특별히 풍미나 질감이 두드러지지 않아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우러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할 수 있는 존재다. 요리사의 창의성과 영감을 받은 대상을 자유롭게 불어넣을 수 있어 ‘요리사를 위한 캔버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비유를 자주 쓰는 사람으로서 갑자기 궁금하다. 실제로 캔버스로 작업하는 화가도 빈 워드 파일을 앞에 둔 작가처럼 막상 빈 캔버스를 눈앞에 조우하면 막막한 기분이 들까? 아무튼.

이렇게 누군가를 위한 캔버스라고 지칭되는 자유로운 가능성을 지닌 존재의 역할은 두 가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지금부터 여기에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을 시작하게 하는 스타트 지점이 되는 것이다. 모든 선택지를 두고 대체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멍하니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닭고기를 앞에 딱 두고 어떻게 맛있게 요리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생각이 구체화되고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기초가 되어 주는 것이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이것이다. 캠핑을 좋아해도 캠핑 요리 메뉴 정하기는 ‘오늘 저녁 뭐 먹지’ 만큼이나 머리가 아프다. 이번에는 대체 뭘 만들어야 하지? 가서 먹어야 하는 끼니는 여럿이라 점심과 저녁은 정했는데 아침 메뉴까지 고민해야 하다니?

신의 계시처럼 내려오는 먹고 싶은 음식이 없을 때 이런 캔버스 메뉴는 사람을 살린다. 밥이냐, 빵이냐, 면이냐? 그중에서 나의 캔버스 선택지는 단연 빵, 그중에서도 토스트다.

크루통부터 간식, 식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역할로도 잘 어울리는 팔방미인

뭐든 올려 먹을 수 있는 ‘접시’ 되기도

버터 바르고 반대편엔 잘게 썬 인절미

콩가루·꿀·아몬드 플레이크도 함께

한국적 고소함 가득 ‘인절미 토스트’

토스트의 변신은 무죄

캠핑 짐을 쌀 때는 꼭 필요해서 항상 챙기는 물건, 이번에만 특별히 챙기는 물건, 혹시 몰라서 챙기는 물건이 있는데 식재료 중에서 혹시 모르니까 항상 집어넣는 것이 토스트용 식빵이다. 노릇노릇 구운 토스트는 그 자체로도 뭐든 올리면 먹을 수 있는 접시의 역할을 한다. 잼이나 땅콩버터, 크림치즈를 예쁘게 번갈아 바른 토스트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보고 있으면 말 그대로 요리 예술을 위한 캔버스라는 실감이 든다.

잼을 발라서 먹고, 수프에 찍어 먹고, 잘게 잘라 바삭하게 구우면 샐러드용 크루통이 되기도 하고. 이것저것 올려서 부피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토스트와 샌드위치 사이의 교묘한 선을 오가는 든든한 식사도 된다. 브런치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질릴 정도가 되었지만 절대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아보카도 토스트’도 온갖 것을 다 올려 아보카도 토스트 혹은 오픈 샌드위치라고 부른다. 햄과 부친 달걀 등을 넣어서 따끈하게 만든 어엿한 샌드위치인 우리나라의 ‘길거리 토스트’는 꿋꿋하게 간편한 이미지의 토스트라고 불리며 관광객에게도 인기다. 명동 거리를 지나가면서 길게 늘어선 토스트 가게 앞 줄을 보고 대체 왜 길거리 토스트를 줄 서서 먹는지 궁금해했던 사람? 어쩌면 그것이 현지 문화를 경험하는 여행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이곳에서 일상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을 여행의 시선으로 보면 하나의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것.

그리고 식빵을 구워서 맛있게 만든다는 토스트라는 개념은 파스타나 피자만큼이나 전 세계인에게 통용될 수 있는 요소라는 점을 재확인시키기도 한다.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고, 그만큼 빠르게 인기 메뉴로 등극할 수 있는 메뉴다. 호주의 아보카도 토스트가 전 세계에 퍼지기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볼 수 있던 길거리 토스트가 프랜차이즈가 되기 전, 2000년대 카페에서는 ‘허니 토스트’가 인기였다. 두툼하게 썬 식빵에 버터를 바르고 노릇하게 구워서 꿀과 생크림 등을 얹은 것이 전부지만 그걸 뜯어먹는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 토스트가 바로 이것을 한국식으로 한층 더 발전시킨 ‘인절미 토스트’다.

달콤고소한 아침, 인절미 토스트

찹쌀을 치대 쫀득하게 만든 찰떡에 콩가루를 묻힌 인절미는 갓 찧었을 때도 맛있고 딱딱하게 굳은 것을 프라이팬에 다시 구워 먹어도 맛있다. 자취하던 시절에는 어머니가 냉동실에 채워 준 인절미를 프라이팬에 겉은 바삭, 속은 쫀득하게 구워 꿀에 찍어 먹는 것이 그렇게 맛있었다. 후에 와플팬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거다! 하며 바삭바삭한 면이 극대화되도록 꾹 눌러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접한 인절미 토스트는 떡의 샌드위치 속재료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였다. 떡보다 꿀과 버터를 흡수해 바삭해지는 기능이 뛰어난 식빵을 위아래로 배치하고, 인절미의 쫀득함과 콩가루의 고소함을 극대화하다니! 탄수화물과 탄수화물의 만남이기는 하지만 1861년 요리책에 실린 ‘토스트 샌드위치’(토스트 사이에 토스트를 넣었다. 대공황 시절의 산물이다)에 비하면 빵과 떡의 결합은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의 만남이다.

여차할 때의 캔버스를 위한 식빵과 남은 인절미가 있다면 캠핑에서도 이 인절미 토스트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식빵 두 장을 준비해서 한쪽 면에 버터를 골고루 바른다. 버터를 바르지 않은 면이 안으로 가도록 해서 잘게 썬 인절미를 원하는 만큼 채운다. 프라이팬에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여기에 고소한 콩가루와 달콤한 꿀, 아몬드 플레이크를 뿌리고 두르면 카페 못지않은 간단 토스트가 완성된다.

한 입 베어 물면 앞뒤로 굽는 사이에 따끈하게 데워진 인절미가 쫀득하게 늘어진다. 아무리 딱딱하게 굳어도 굽기만 하면 제 매력을 되찾으니 이 정도면 훌륭한 보존식이다. 거기다 버터를 흡수해 바삭바삭 노릇하게 익은 빵에는 꿀이 스며들어서 단맛과 고소함도 따로 겉돌지 않는다.

빵에 넣은 떡이, 떡을 넣은 빵이 이렇게 맛있다니.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토스트의 가능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음 캠핑에는 토스트에 뭘 올려서 먹어 볼까. 여차하면 전날 먹고 남은 닭갈비에 치즈만 올려도 아침 한 끼를 만족스럽게 때울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토스트에 질릴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자체로 가능성인 토스트는 캠핑 메뉴의 캔버스, 캠핑 요리사의 구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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