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기 55㎝ 왕도미 찾아라” 마지막 황후의 유별난 입맛

2025-12-28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

눈을 감아 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창덕궁 인정전 만찬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때는 해방의 기쁨이 차오르던 1946년 봄. 창덕궁 인정전에서 파티가 한창입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 국방부에서 온 손님들이 “원더풀”을 외치며 프랑스 코스요리를 맛보고 있네요.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 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왕조의 궁궐로 외빈을 초대한 겁니다. 해방 후 궁에서 열린 첫 파티였던 셈이죠.

인정전 파티 현장을 분주히 누비는 이가 있으니, 한국인 1세대 웨이터 이중일씨입니다. 이중일씨가 1971년 중앙일보에 직접 적은 남기고 싶은 이야기, 만나보시지요.

사실 확인을 위해 다양한 관련 서적과 사료를 참고했습니다. 보완해 추가한 내용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은 기사 끝에 적시했습니다. 기사를 ‘듣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그 옛날 변사가 무성영화 해설을 하는 듯한 오디오도 마련했습니다. 구글AI 스튜디오로 생성한 오디오는 기사 중간에 나오는 버튼을 살짝 눌러만 주시면 됩니다.

모던 경성 웨이터⑬ 구두 밑창보다 질긴 스테이크

중앙일보 1971년 3월 10일자

해방 후 서울엔 미국 물결이 쏟아져 흘러들었지만 양식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쿠크(셰프)’의 얼굴도 빤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지만, 건강하게 살기 위해 현명하게 먹어야 한다. 영양가를 최선의 방법으로 육체에 흡수시키는 것이 ‘쿠크’의 최대 임무가 된다. (1971년 기준) 생존해 있는 최고참 ‘쿠크’인 윤성모(당시 67세)는 “요리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에선 쿠킹(요리) Ph D(박사) 과정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외국엔 “우리는 외과 의사가 수술하러 들어갈 때처럼 깨끗하게 소독한 손으로 요리한다”고 써붙인 레스토랑도 있다고 한다. 주방은 외인의 출입이 금지된 신성 불가침 지역이다. 정결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음식이 요리된다. 그렇기 때문에 흰 두건을 포함한 유니폼은 청결과 봉사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쿠크’가 되려면 접시닦이 1년, 야채 손질과 감자껍질 벗기기를 3년 해야 하고, 요리를 담아내는 방법과 메뉴까지 익히려면 10년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해방 후 급증하는 양식 인구의 수요에 따라갈 참다운 양식 공급이 아쉬웠다.

고객 중에서도 양식을 잘 아는 이들이 있었다. 조병옥 박사 같은 이는 특히 양식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았다. 그는 보통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잘라서 버리곤 하는 로스트비프의 탄 쪽을 벗겨 달라고 미리 주문하기도 했다.

장택상씨는 여름이면 꼭 얼음에 채웠다 꺼낸 ‘콜드 미트(cold meat)’를 찾았다. 익히거나 소금에 절인 고기를 얇게 썰어낸 뒤, 차갑게 식혀 내는 요리였다. 동산 선생(윤치영씨)은 메뉴를 보고는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게 있군, ‘베이키드 빈스(baked beans)’ 말야”라고 말하며 주문을 하곤 했다. 베이키드 빈스는 말 그대로 콩을 익힌 요리이긴 하지만 엄연한 양식이다. 요즘에는 ‘부대찌개 콩’이라고들 알고 있지만, 흰 콩 또는 강낭콩을 육수에 진하게 끓여 풍미를 이끌어낸, 손이 꽤 가는 요리다.

그런데 어떤 고객은 “양식집에서 메주를 끓여 파느냐”고 해서 아쉬웠는데, 주인을 제대로 만날 땐 기쁘기 한량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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