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떡값은커녕 휴일도 제대로 못 쉬어”…갈수록 심화하는 기업 간 양극화

2025-01-29

“사다리타기로 3명만 떡값 받고 나머지 6명은 뭐 빈손이죠…”

서울 소재 영상 스타트업에서 6년째 근무 중인 이모(39)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 명절을 맞아 보너스를 기대했지만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운 좋은 직원 3명만 5만원, 7만원, 10만원을 받고 이씨는 ‘꽝’에 걸렸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최근 대기업에서 수백 퍼센트, 많게는 1000%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간다. 이 씨는 “예전에는 작은 기업에 들어가서 열심히 해서 실력 인정받고 발전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며 “요새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게 당연하고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이번 설 명절에도 대기업이 ‘더 많이 받고 더 많이 쉬는 것’으로 조사됐다. 300인 이상 기업과 100인 미만 기업 간 설 보너스 차이는 2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기업 간 양극화는 기업 생태계 파괴 및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하는 ‘청년 취업 포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설상여 300인 이상 138만원, 100인 미만은 74만원

28일 한국경영자협회총협회가 전국 6인 이상 60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설 휴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직원 300인 이상인 곳의 78.8%가 올해 상여금을 지급한다고 응답한 반면, 300인 미만 기업은 60.3%에 불과했다.

설 상여금 액수 차이도 컸다. 커리어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지급액은 138만원으로 가장 많은 반면 300인 미만 기업은 약 60% 수준인 84만원, 100인 미만은 74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기업 규모가 작아질수록 상여금 규모도 작아지는 셈이다.

이 같은 설 상여 양극화의 배경에는 최근 3高(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장기화로 인한 경기침체가 자리한다.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 실적이 악화해 설 상여를 지급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협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고환율로 인해 오른 원자잿값을 고스란히 떠안는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피해 정도가 훨씬 커 임직원을 챙길 여력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인천 소재 중소기업에서 5년째 근무 중인 김모(31)씨는 “원자재 수입 가격은 올랐는데 대기업 납품 단가는 오르지 않아 회사의 적자가 커지고 있다”며 “입사 초기에는 귀성 차비 명목으로 10∼20만원 정도를 쥐여주곤 했는데 최근 3년간 런천미트 주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中企 10곳 중 6곳 임시공휴일 ‘안 쉬어’

휴일을 사용하는 데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가 극명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에 있는 8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중소기업 자금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개사 중 6개사(60.6%)는 이번 임시공휴일에 쉬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그중 99.2%는 설 연휴 외 추가 휴무계획도 없다.

인천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는 A씨는 “공장에서 납기 기한을 맞춰야 한다고 해서 이번 임시공휴일은 물론 몇 주 연속 토요일에 출근하고 있다”며 “연휴를 쓰려고 해도 사유서를 내라고 하고 눈치를 줘 보통 연차의 절반 정도는 소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총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42%가 ‘7일 이상 휴무’를 갖는다고 답했다. 임시공휴일(27일)을 포함해 24일부터 30일까지 쉰다는 의미다. SK와 현대차 등 일부 대기업의 경우 31일까지 유급휴무를 제공해 총 9일의 황금연휴를 갖는다.

SK 계열사에 근무하는 신모(32)씨는 “회사에서 연휴를 길게 줬고 집에서는 차례도 지내지 않아 이번 연휴기간 내내 일본에서 보드를 탈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년 수 줄었지만 노는 청년은 40만 넘어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업 간 양극화가 청년들의 취업 의지를 좌절시켜 중소기업 생태계를 망가뜨린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줄어들었던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41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36만6000명) 12.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청년층 인구가 830만6000명에서 805만5000명으로 감소했음에도 오히려 쉬는 청년은 늘어난 것으로 실질 증가분은 더 크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항상 위기에 취약한 쪽은 약자”라며 “고환율 장기화 현상, 불경기임에도 긴축재정으로 인한 정부 지출의 축소 모두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 결과 중소기업 임직원들의 처우는 악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 간 양극화는 청년들의 대기업 쏠림 현상을 강화해 중소기업 생태계를 파괴해 결국 국가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현재 권고 수준의 제도인 ‘납품단가연동제’를 강화하는 등 이익이 원청으로 쏠리는 현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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