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성 행세하며 수백만원 꿀꺽… 로맨스스캠 기승
공항주차장서 “車 긁었다”며 접근
매일 연락 주고받다 투자 유인해
2024년 유사범죄 신고 1200건
피해액만 675억… 경각심 높여야
“실수로 차를 긁었어요.”
지난해 겨울 해외여행을 다녀온 60대 강모씨는 귀국한 이튿날 A씨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여행을 떠나면서 차를 인천공항 주차장에 주차했는데, 그사이 차에 흠집이 났다는 것이다. 문자를 받고 차량 상태를 확인한 강씨는 별 이상이 없어 “괜찮다”고 답했지만, A씨는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이어갔다. 자신을 마카오 출신의 20대 여성이라 소개한 A씨는 강씨에게 여권 사진까지 보내며 접근했다. A씨는 매일 아침 강씨에게 연락하고, ‘오빠’라고 부르며 친밀감을 쌓았다.

자신이 보육원에 후원할 만큼 경제적으로 자립했다는 A씨는 어느 날 강씨에게 대뜸 “큰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인터넷주소(URL)를 보내왔다. 해당 홈페이지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재판매하면 30% 이상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고 꼬드겼다. 솔깃한 강씨는 자신의 신분증과 계좌번호를 알려준 뒤 30만원을 입금했고, 실제 강씨 계좌로 40만원가량의 수익이 들어왔다. 점차 액수를 올려가던 강씨는 마지막에 200만원을 입금했지만,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사기라는 것을 깨달은 강씨는 A씨에게 ‘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강씨는 “오빠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며 “이렇게 사기를 당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최근 강씨의 고발장을 접수해 해당 사기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강씨처럼 상대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 사기를 당하는 ‘로맨스 스캠’ 범죄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범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신고 건수는 1265건, 피해 규모는 675억원에 달한다.
로맨스 스캠 범죄는 주로 외국인을 사칭해 접근한 뒤 환심을 사 돈을 빼앗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계 외국인 여성을 사칭해 가상자산, 금 선물거래 등 투자를 유도한 국제 사기 조직 일당 20명이 검거됐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로맨스 스캠은) 범죄자 특정이 어려워 수사 대상이 안 되는 사례도 많다”며 “개인이 경각심을 갖고 조심하는 태도가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한서·변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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