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700만원 ‘배리어프리 기능’ 기기값의 30%는 업주 부담
“인건비 줄이려 설치했는데 목돈 들어…어기면 과태료까지”
부처 입장 제각각…장애인 측 “이러려고 의무화 촉구했나”

사회적 약자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무인정보단말기 설치 의무화가 시행됐지만, 소상공인은 물론 장애인들도 크게 반기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은 부족한 데다 이해당사자 간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내년에 전면 시행될 예정이어서 오히려 제도 안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경향신문이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올해 배리어프리(Barrier-Free·무장애) 무인정보단말기 설치 관련 예산은 325억원으로 지난해 344억원보다 5.5% 줄었다. 이마저도 무인정보단말기 보급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금액은 284억9500만원이다. 키오스크 1대가 700만원가량 되는 고가여서 예산을 통해서는 5970대 정도 설치하는 데 그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추산하는 배리어프리 무인정보단말기 의무 설치 대상은 전국 3만7992곳에 이른다.
무인정보단말기에는 키오스크는 물론 테이블오더기와 티켓발권기 등이 포함된다. 정부는 지난 1월28일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에 따라 ‘상시 근로자 100인 미만 사업장이면서 면적 50㎡(약 15평) 초과 매장’에 설치된 무인정보단말기는 배리어프리 기능이 탑재된 제품으로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기존 무인정보단말기도 내년 1월28일부터 높이 조절이나 실시간 음성 안내, 큰 글씨, 수어 영상, 점자 등 배리어프리 기능이 가능한 기기로 교체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3000만원이 부과된다. 정부 지원을 받아 설치하더라도 기기값 중 30%는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말 키오스크를 활용 중인 업체 402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85.6%가 ‘관련 내용을 모른다’고 답했다.
경기 의정부에서 샤부샤부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38)는 “우리는 테이블오더기만 있어서 적용 대상인지조차 몰랐다”며 “인건비라도 줄여볼까 싶어서 들여놓은 건데 생각지도 못한 목돈이 들게 생겼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관련 단체들은 적용대상 완화나 제도 시행 무기한 유예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과태료 부과에 불안해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또한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본다. 일단 장애인차별금지법(보건복지부 관할)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되면 조사 후 시정권고가 이뤄진다. 과태료는 시정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부과된다.
관계 부처 간 입장도 제각각이다. 배리어프리 무인정보단말기 검증 기준과 규제는 지능정보화기본법(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할)에도 적시돼 있다.
점자블록 등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달리 지능정보화기본법은 무인정보단말기에 배리어프리 기능이 없더라도 호출벨이나 보조인력 등을 배치하면 된다.
장애인단체들은 이러려고 배리어프리 무인정보단말기 의무화를 촉구했던 것이 아니라며 답답해하고 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장애인들에게는 제도 유예를 이야기하며 ‘조금 더 참으라’고 하고 소상공인들에게는 ‘부담돼도 어쩔 수 없다’면서 양쪽의 이해관계 문제인 것처럼 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부담과 책임을 온전히 소상공인에게만 지우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며 “정부가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실질적인 예산 지원과 대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