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리트 선수라면 생리가 없어도 괜찮다.”
미국 사이클리스트 베로니카 유어스(31)는 2022년 건강검진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의사가 던진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호르몬 수치가 거의 바닥인데도, 의료진은 이를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는 12일 글로벌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여성이 생리를 멈출 때가 피트니스의 정점’이라는 말을 믿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3년 부상으로 시즌을 접은 뒤, 회복 과정에서 발 뒤꿈치가 부러졌고 골밀도 검사를 받자 결과는 ‘골다공증 직전’이었다. 그는 “생리를 멈춘 것은 몸이 경고를 보낸 신호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국 여성 선수 769명을 대상으로 한 2023년 ‘여성선수건강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36%가 생리 이상이나 무월경을 “운동을 많이 해서 생긴 정상적인 현상”으로 여겼다. 심지어 30%는 의료진에게서 “활동량이 많으니 생리 안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오레코 연구소 케리 맥골리 교수는 “지금도 선수들이 ‘생리가 있으면 훈련이 부족한 거야’라는 말을 듣는다”며 “누구도 그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그저 성과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생리 중단이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RED-S(운동으로 인한 상대적 에너지 결핍 증후군)’의 대표적 신호라고 설명한다. 섭취 에너지보다 소모 에너지가 많을 때 나타나는 RED-S는 골밀도 저하, 피로, 철분 결핍, 회복력 감소, 수면장애, 심리적 불안까지 초래한다. 장기화될 경우 생식기능 저하와 조기 골다공증 위험도 커진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생리가 중단된 고강도 러너들은 훈련 결손일이 늘고 부상 빈도와 피로감이 증가했다. 생리주기를 무시한 ‘남성 중심형 훈련 시스템’이 여성 선수의 커리어를 단축시키는 셈이다.
미국여자축구대표팀(USWNT)은 2019년 월드컵 우승 당시부터 생리주기 추적을 훈련 관리에 도입했다. 첼시FC 여성팀 역시 에마 헤이스 감독이 주도해 선수별 주기에 따라 훈련을 세분화했다. 이 접근법은 현재 WNBA와 NWSL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국제연맹도 RED-S와 호르몬 건강을 선수 평가 기준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 종목은 남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와 훈련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맥골리는 “여성 호르몬 변화를 변수로 삼는 게 불편하다는 이유로 과학은 늘 ‘저항이 적은 길’을 택해왔다”고 지적했다.
최근 투르 드 프랑스 팜에서 준우승한 네덜란드의 데미 폴러링은 기자들의 “체중을 더 줄였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단호히 말했다. 그는 “우리는 완벽한 균형 속에서 싸워야 한다”며 “두 해만 잘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잘하고 싶다면 내 몸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동료 세드린 케르바올도 “우리는 운동선수이기 전에 여성이다. 생리를 통제하거나 무시하자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이클연맹(UCI)은 RED-S와 골밀도 의무검사를 추진 중이며, 각국 선수단에서도 생리주기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수의 생리 주기는 건강의 ‘생체 신호’이자 무료로 주어진 건강 지표”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 선수들의 몸은 남성 기준의 잣대 속에서 ‘관리’되고 있다. 영양학자 르네 맥그리거는 “체지방률 21%가 생리 유지의 최소 기준이지만, 많은 선수들은 경기력 향상 명목으로 그 이하로 밀어붙인다”며 “여전히 ‘여성은 말라야 빠르다’는 신화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어스는 아직 완전히 생리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골밀도는 회복 중이다. 그는 “호르몬과 대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의사도 ‘언제 회복될지’ 답을 모른다”며 “보이지 않는 상처가 가장 오래간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고 싶다.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몸을 잃어버리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