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사진∙영상 속 고인 복원
생전 모습 그대로…슬픔 위안
GAN∙3D 모델링 기반 외형 재현
자연어 처리기술로 대화도 가능
고인의 자기결정권∙왜곡 소지
상업적∙악의적 이용 가능성도

[정보통신신문=차종환기자]
떠나간 이들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이러한 그리움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고인의 생전 모습, 목소리, 심지어 말투까지 복원하는 'AI 추모'가 등장한 것이다.
‘AI 추모’는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고인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며 깊은 감동을 전해주지만, 고인의 사생활 침해, 기억의 왜곡, 슬픔에 대한 고착화와 같은 윤리적 문제도 함께 대두되고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새로운 방법
AI 추모 기술은 다수의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최근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멤버 김종민의 결혼을 축하하는 이벤트에 AI 기술로 복원된 어린 시절 김종민의 아버지가 공개됐다.
AI 기술을 활용해 오래된 흑백사진 속 아버지가 움직이는 영상으로 복원됐는데,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어린 김종민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에 뽀뽀하는 등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종민은 가물가물하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인의 AI 복원은 앞선 2020년 엠넷에서 방송된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번'을 통해 이미 화제가 된 바 있다. 고인이 된 가수를 AI로 복원해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 것이다.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이 AI로 복원돼 기존 멤버들과 함께 히트곡을 공연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가수 김현식 역시 특유의 목소리와 감성이 그대로 재현돼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2023년 방영된 KBS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AI 추모 기술의 새로운 활용성을 제시했다.
역사 속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복원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재현해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시청자들은 역사적 인물들을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최근에는 상조회사 등에서 AI 추모 서비스를 도입, 고인의 사진과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휴먼을 제작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AI 모델링 기술의 총 집합체
고인을 복원하는 것은 각종 AI 모델링 기술을 정교하게 결합함으로써 이뤄진다. 외형 복원, 목소리 합성,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반응 구현이 핵심이다.
사실적인 외형은 주로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이라는 딥러닝 모델을 통해 구현된다. 생성자(Generator)와 판별자(Discriminator)라는 2개의 신경망이 경쟁하며 실제와 매우 흡사한 이미지나 영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생성자는 고인의 과거 사진과 영상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얼굴 이미지나 3D 모델을 생성한다. 처음에는 흐릿하고 어색한 이미지를 만들지만, 판별자와의 경쟁을 통해 점차 실제 고인의 모습과 유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판별자는 생성자가 만든 이미지와 실제 고인의 사진 및 영상 데이터를 비교하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 판별자의 피드백은 생성자가 더욱 현실적인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돕는다.
여기에 다양한 각도에서의 사진이나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인의 얼굴 윤곽, 이목구비, 피부 질감 등을 세밀하게 모델링하는 3D 모델링 기술이 더해진다. 이로써 평면적인 이미지를 넘어 입체적인 형태와 깊이를 갖게 된다.
고인의 목소리는 텍스트-음성 변환(TTS: Text-to-Speech) 기술을 통해 재현된다.
초기 TTS 기술은 미리 녹음된 음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텍스트를 읽어주는 방식이었지만, 최근에는 딥러닝 기반의 TTS 기술이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고인의 과거 음성 데이터(인터뷰, 영상 등)에서 발음, 억양, 속도, 음색 등 고유한 음성 특징을 추출하고 분석한다.
추출된 음성 특징을 딥러닝 모델로 학습시키면 고유한 음성 특징을 반영한 텍스트 읽기가 구현된다. 고인의 말투, 습관적인 표현, 감정 표현 방식까지 학습하면 AI가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 고인이 말하는 듯한 뉘앙스를 담아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반응 구현에는 '모션 캡처'와 '대화형 AI'가 도입된다.
모션 캡처는 배우의 움직임을 센서로 기록하고, 이 데이터를 AI 휴먼의 3D 모델에 적용해 자연스러운 몸짓과 표정을 구현하는 것이다.
대화형 AI는 자연어 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적절한 답변을 생성한다. 고인의 인터뷰, 발언 등을 학습해 특정 질문에 대해 고인이 실제로 했을 법한 답변을 추론하기도 한다.

■죽어서도 쉬지 못한다…윤리적 문제 산재
AI 추모 기술은 망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 슬픔을 위로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로, 고인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다.
AI 추모는 고인의 사후에 이루어지는데, 고인이 AI 형태로 자신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활용되는 것을 생전에 동의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고인의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AI는 학습 데이터에 기반해 고인을 재현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편향성이나 부족으로 인해 실제 고인의 모습과 다르게 왜곡되거나, 특정 측면만 강조될 소지가 있다. 연예인 등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고인의 경우, 유족의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거나 악의적인 목적으로 활용될 위험이 있다.
유족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AI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은 망상이나 현실 도피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특히 어린이나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AI 고인에 대한 감정적 의존성이 생겨,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 관계 형성을 저해하거나 고립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AI 추모가 보편화되면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할 수 있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보다 기술을 통해 극복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AI 추모 기술 자체가 많은 비용을 수반할 경우 경제적 능력에 따라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에 차이가 생겨,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AI 추모 기술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유족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며,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