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의 AI 전환과 한국 AI 방산의 과제

지난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상호관세 부과와 제조업 투자에 이어 국방비 증액이 양국의 협상 현안에 가세했다. ‘한·미 동맹 현대화’의 논란 속에 정부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내년 국방예산은 약 66조3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8.2% 증가할 예정인데, 이는 GDP 대비 2.42% 수준이다. 향후 국방비를 GDP 대비 3.5%로 높이려면 30조원가량 증액이 필요하다.
한·미 정상, 국방비 증액 합의…34조원 규모 미국산 무기 구입 협의 중
시총 세계 1위 팰런티어 등 미국 AI 방산업체의 국내 시장 진출 활발
미국산 첨단 AI 기술 단순 도입하느냐, 자체 기술개발이냐 고민거리
꼭 필요한 핵심 기술 스스로 확보하고 경쟁력 있는 AI 방산 육성하길

그러면 이 증액분을 어디 다 써야 할까? 한·미 양국은 2030년까지 34조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 협의 과정에서 미국의 입맛에 맞춘 단순 무기 구매보다는 ‘한·미 동맹의 인공지능(AI) 전환’을 염두에 둔 AI 국방 분야의 첨단 시스템과 AI 무기체계에 대한 투자를 우선해서 챙겨야 할 것이다.
한·미 동맹과 연계된 AI 국방 전환
최근 우리 군이 안고 있는 AI 국방 전환의 과제는 크게 세 분야에서 제기된다. 첫째 AI 기반 지휘통제체계 구축의 과제다. 다차원의 실시간 전장 데이터를 통합·분석해 지휘관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합동전영역지휘통제(JADC2)’ 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둘째 AI를 활용한 유·무인 복합체계 도입의 과제다. AI 기술을 접목해 성능이 향상된 자율주행 ㅋ전투차량, 무인 정찰 드론, 자율 감시 로봇 등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끝으로 AI를 활용한 정보·감시·정찰(ISR) 역량 고도화의 과제다. 위성영상 판독, 신호정보 분석, 감시정찰 등에 AI를 활용해 조기경보, 미사일 방어, 수중탐지 등의 능력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이들 모두 한·미 동맹과 연동해서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재편하고 AI 분야 국방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JADC2 체계를 향후 동맹국 군대에도 적용할 계획임을 암시했다. 주한미군과의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우리 군으로서는 이러한 체계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무인 복합체계의 도입에서도 한·미 양군의 상호연동성은 중요한 변수다. AI를 활용한 ISR 역량의 고도화도 한·미 동맹 차원의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AI 전환 과정에서 자국 기업들의 무기와 기술을 수용하라는 미국의 요청이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AI 방산업체 발걸음 빨라져
미국 AI 방산업체들은 한·미 국방 AI 협력이 필요한 많은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 이 분야 신흥강자인 팰런티어는 지난 2월 기준 시가총액이 무려 2050억 달러로 세계 1위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1100억 달러)의 두 배 수준이 됐다. 그 주력 제품은 전장 분석용 소프트웨어 고담과 AI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 AIP이다. 이 뒤를 바짝 쫓는 기업이 안두릴이다. 자율 감시 서비스 센트리 타워, 감시·정찰용 고스트 드론, 데이터 통합 운영체제 래티스 등이 대표 제품이다. 쉴드AI는 AI 기반 자율드론,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다목적 수직 이착륙 무인기 V-BAT로 명성을 높였다.
이들 미국 AI 방산업체의 국내 시장 진출이 최근 부쩍 활발해졌다. 팰런티어는 지난해 4월 HD현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정찰용 무인수상정을 개발하기로 했다. 팰런티어는 지난해 8월 LIG넥스원과도 ‘미래 무기체계 빅데이터 플랫폼 활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안두릴은 지난 4월 방위사업청과 첨단 무인체계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맺었으며, 지난 8월 한국 지사를 설립한 후 대한항공·HD현대·LIG넥스원 등과 합작해 AI 기반 무인기, 자율함정, 감시정찰 시스템 등의 공동개발에 착수했다. 쉴드AI는 지난 5월 LIG넥스원과 유·무인 복합 및 자율작전 시스템 등 미래 전장에 최적화된 핵심 솔루션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들 미국 업체와 협업해 기술을 고도화하려는 국내 전통 방산업체들의 걸음도 빨라졌다. 주로 자신들의 주력 제품인 무기체계 하드웨어 개발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AI 자주포 K9A3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한화오션·한화시스템과 함께 2028년까지 무인수상정·무인차량·무인로봇 등 군용 제품 라인업 개발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 HR-셰르파의 제4세대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며, 유·무인 복합체계의 운용 개념이 반영된 차세대 전차와 군용 다족보행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무인체계·유도무기·감시정찰 분야에서 기술력을 쌓았는데, 최근 사이버·무인자율·우주 분야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전투기와 무인기·위성이 연계된 차세대 공중전투체계(NACS)를 접목해 제6세대 전투기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 국방 AI 전문기업들의 도전도 눈여겨봐야 한다. 코난테크놀로지는 국방 AI 챗봇과 국방용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다. AIoT(AI+사물인터넷) 및 AI 전문기업인 펀진도 유망 기업이다. 방산 AI 합성 데이터 스타트업 젠젠에이아이도 시선을 끈다. AI 플랫폼 기업인 인피닉도 전술 차량, 이동형 관제 시스템에서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무기 체계별 맞춤형 AI 솔루션 개발을 지원하는 퀀텀에어로나 무인이동체 자율군집 제어기술을 보유한 파블로항공 등도 눈길을 끈다. 이들 기업은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등 AI 기술 자체를 국방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공략하는데, 최근 이들 AI 전문기업이 전통 방산업체들과 협업하는 사례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외국 기술에 지나친 의존은 경계
이러한 국방 AI 전환 과정에서 미국의 첨단 AI 기술을 단순 도입할 것인지, 아니면 자체 기술개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는 우리가 안고 있는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JADC2 체계의 신속한 구동을 위해 미국 기술을 수용하는 것은 손쉽게 한·미 양국 군의 상호운용성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외국 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자주국방의 역량을 잃는다는 지적도 흘려들을 수 없다. 동맹국 간에도 첨단 군사기술 이전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꼭 필요한 핵심 기술 역량은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외국 기술의 단순 도입을 넘어서 국방 AI 생태계를 스스로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국방 분야에서도 ‘소버린(Sovereign) AI’가 거론된다. 소버린 AI는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AI 모델을 자주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위한 기술 역량과 더 나아가 자주적 AI 생태계까지 구축하자는 담론이다. 지난 7월 한화시스템은 대공방어를 위한 ‘미래형 전장 상황인식 AI 모델’의 연구·개발에 착수하면서 10여 개의 대학 및 기업들과 ‘국방 AI 기술 자립 및 생태계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각각 체결했다. 이밖에 자체 기술을 바탕으로 군수·설계 자동화 등 국방 현장에 특화된 서비스를 선보이며 국방 분야의 소버린 AI를 추구하는 기업들도 눈에 띈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포티투마루가 그 대표적 사례다.
국방 AI도 대규모 투자 필요해
이러한 분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 상황은 여의치 않다. 그나마 민간 AI 분야에는 몇몇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버티고 있지만, 국방 AI 분야는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최근 K방산은 세계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AI 방산 분야에는 아직 뚜렷이 두각을 드러낸 국내 업체들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팰런티어나 안두릴·쉴드AI 등 미국 AI 방산업체들이 국내 시장으로 밀려오고 있다. 게다가 원활한 ‘한·미 동맹의 AI 전환’을 위해 미국 기술을 도입해서라도 AI 기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AI 방산 역량은 아직 부족하지만, 첨단 AI 기술은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출범한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이전의 ‘국가AI위원회’와는 달리 ‘국방 및 안보 분과’를 새로 설치했다. AI 국방을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기대가 큰 만큼 앞으로 당면한 과제도 많다. 특히 경쟁력 있는 AI 방산의 육성이 시급한 과제다. 한·미 관세 협상과 연동된 미국산 무기·기술 구매 요청에도 대응해야 하고, AI 기반 한·미 연합체계를 시급히 구축할 전략·전술적 수요에도 부응해야 한다. AI 전환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챙겨야 할 분야가 많겠지만, 국방 AI 분야에도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