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31일부터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에 미국산 ‘대두(soybean)’ 수입 재개를 요구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미국의 콩이 그렇게 대단한 무역 협상 사안인가 싶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그리 간단한 농산물이 아닌 까닭이다. 대두 농가가 자신의 지지 기반에 넓게 퍼져 있어 중국의 수입 중단 문제는 내년 11월 3일 중간 선거 결과를 뒤흔들 수도 있는 사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두 수입 중단이 희토류 수출 제한 만큼이나 미국을 강력하게 압박 무기가 되는 셈이다. 중국이 이미 중국계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의 미국 사업권 이양,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등 미국에 여러 양보안을 제시한 만큼 대두 수입을 계기로 미국에 ‘대만 독립 반대 선언’과 같은 궁극의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하고 브라질산 확대…트럼프 “시진핑과 한국서 논의할 것”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의 대두 수입 중단 문제를 두고 시진핑 국가주석과 담판을 짓겠다는 입장을 수 차례 내비치고 있다. 사실상 자국 농민들의 불만을 다독이기 위한 내부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취재진과 만나 “대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우리는 중국산을 대규모 수입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것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나와 논의하고 싶은 사안들이 있고 나도 시 주석과 논의하고 싶은 사안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대두 문제”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도 글을 올리고 “중국이 단지 협상을 이유로 구매를 중단하면서 우리나라 대두 재배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4주 뒤 시 주석과 만날 것이고 대두는 대화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관세로 많은 돈을 벌었으니 그 수익의 작은 일부로 농민을 도울 것”이라며 “졸린(Sleepy)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수십억 달러의 우리 농산물, 특히 대두를 구매하기로 한 중국과의 협정을 집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문제는 지난 5월 10∼11일 스위스 제네바 1차 회담, 6월 9∼10일 영국 런던 2차 회담, 7월 28~29일 스웨덴 스톡홀름 3차 회담, 지난달 14∼15일 스페인 마드리드 4차 회담에서도 미국 측의 주요 의제로 연달아 다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이맘때 미국산 대두를 650만 톤 수입하기로 계약했지만 올해는 구매·선적 물량이 단 한 건도 없다.
이에 대해서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도 2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안타깝게도 중국 지도부가 미국 농민, 특히 대두 재배 농민을 무역협상에서 인질 혹은 장기판의 말(pawn)로 삼기로 결정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달 말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점이고 매우 큰 돌파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거의 모든 무역협정에는 미국 농산물 구매가 있다”며 “다른 국가들이 중국을 대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선트 장관은 또 “제네바 회담에서 나는 중국에 ‘왜 대두와 다른 제품을 계속하지 구매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들은 ‘바이든’이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고 주장했다.
中, 아르헨티나산 대두까지 최대 수입…가격 폭락에 공화당도 “농부들 화났다”

실제 중국은 미국에 대한 무역 압박 수단으로 같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신흥 경제 5개국)’ 소속인 브라질 등 남미산 대두 수입을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는 8월 브라질산 대두 수입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늘어난 1049만 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대두 수입 물량의 85.4%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의 8월 미국산 대두 수입도 전년 동기보다 12.3% 증가한 22만 7205톤을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은 다만 이는 브라질의 대두 수확 지연 등에 따른 현상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중국 측이 새로 수확되는 미국산 대두에 대한 구매 예약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두는 14억 중국인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으로 중국은 매년 미국산 대두의 25% 이상을 구매하는 최대 수입국이었다. 지난해에만 미국산 대두를 수입한 규모가 126억 달러(약 17조 8000억 원)에 달했다. 중국은 이전까지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북반구의 미국산 가을 대두를 수입한 뒤 3월부터 남반구의 남미 국가에서 이를 사들였다. 미국산 대두 구매 예약은 10월이 되기 몇 개월 전에 이미 끝마친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도 대두를 비롯한 미국산 농산물을 대규모로 구매하기로 하면서 이른바 ‘무역 전쟁’에 타협한 바 있다.
같은 달 25일 블룸버그·AP통신, 뉴욕타임스(NYT)도 미국이 대두 수확기에 들어간 지 2주가량 지난 9월 11일까지도 중국이 미국산 대두를 1건도 예약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올 5월 이후 미국산 대두 주문이 끊겼다는 것이다. 1~7월 미국의 중국 대두 수출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감소했다. 중국 판로가 사실상 막히면서 미국의 올해 대두 수출은 23%가량 감소했다. 이에 따라 대두 가격은 폭락하고 재고 증가에 옥수수 등 다른 작물을 저장할 공간마저 부족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농무부 자료를 인용해 중국이 이 시기까지 미국의 대두 구매를 예약하지 않은 것은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1999년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지난달 2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산 대두 수입을 중단한 대신 아르헨티나에서 35건 이상의 화물 선적을 예약했다. 11월에 선적될 예정인 계약분만 227만 톤 이상에 이른다. 이전까지 중국의 월별 남미산 대두 수입량 최대치는 2015년 7월 223만 톤이었다. 미국 대두협회는 이 소식에 “농업 경제가 고통을 겪고 있으니 중국과 즉각적으로 거래해 달라”는 성명까지 냈다. 이이오와주에 지역구를 둔 공화당의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25일 SNS에 글을 올리고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혼란에 직면한 아르헨티나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직후 중국에 대두를 판매했다”며 “농부들이 매우 화가 났으니 당장 중국과 무역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7일 지방선거에서 참패해 궁지에 몰린 ‘남미의 트럼프’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같은 달 24일 아르헨티나와 통화 스와프(화폐 맞교환)를 맺겠다고 발표한 점을 꼬집은 발언이었다.
“바이든 탓”도 안 통해 내년 11월 중간선거 위태…中, ‘희토류 기술’도 수출 통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대두 수입 중단 문제에 극도로 민감해 하는 것은 이들 농가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이기 때문이다. 아이오와를 비롯해 일리노이·미네소타·네브래스카·인디애나주 등은 미국 중서부의 대두 생산지는 공화당의 지지 기반이면서 민주당과는 주 단위로 경합하는 지역이다. 더욱이 미국은 내년 11월 3일 선거에서 연방 하원 435석 전체, 상원 100석 중 34석, 주지사 50석 중 36석을 새로 뽑는다. 여기서 밀릴 경우 자칫 조기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에 빠질 위기에 처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우익 청년 보수 인사인 찰리 커크의 암살에 극렬하게 반응하며 ‘좌파와의 전쟁’을 이어가는 것도, 연방정부의 일시적 업무중지(셧다운)를 불사하고 민주당과 각을 세우는 것도, 우방 국가의 원성까지 들으면서 이민 단속에 매진하는 것도, 각국에 관세를 매기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해 재정 적자 방어에 나서는 것도 모두 내년 선거 전략과 연계돼 있다. 중국의 대두 수입 중단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對)중국 관세에서 촉발됐음을 모두가 아는데도, 현 정권 주요 인사들이 책임을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떠넘기는 이유도 모두 정치적인 고려 때문이다.
FT는 지난달 26일 “중국의 보복 조치가 미국 중서부 지역의 대두 농가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먀 이 지역이 주요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경합주에 속해 있어 정치적인 파장이 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정치적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막바지 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이달 9일 “국가 안보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희토류 관련 기술과 기타 품목에 대한 수출 관리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맞서 자체 생산 계획에 돌입하자 영구자석 재료와 희토류 채굴·제련·분리·야금 등 희토류 관련 소재·기술의 수출까지 통제하겠다는 뜻이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도 지난달 29일 미국 수출제한 기업 명단인 ‘우려 거래자 명단(entity list)’ 적용 범위를 자회사까지 확대하는 규제를 신설하며 중국을 견제했다. 전문가들은 화웨이와 폐쇄회로(CC)TV 기업 하이크비전, 드론 제조 업체 DJI 등의 중국 기술기업이 이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다.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에 따르면 현재 우려 거래자 명단에는 약 3400개의 기업이 등재돼 있고 이 가운데 중국 기업은 3분의 1인 약 1100개에 달한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10~25% 수입 목재 가구 관세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였다.
다만 두 나라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냥 긴장도만 올리지도 않고 있다. 중국은 최근 자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현지 사업권과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잇따라 포기하는 등 미국이 요구한 일부 사안을 양보하는 자세를 취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무 장관도 지난달 30일 중국 건국 76주년 기념일(국경절)을 맞아 중국 국민에게 “건강과 행복, 번영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지난해에는 10월 3일이 돼서야 토니 클링컨 당시 국무부 장관이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던 점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한층 우호적으로 바뀐 셈이다.
트럼프, APEC 본행사 패싱하고 習 만날 수도…시진핑, ‘대만 독립 반대’ 궁극 목표

주요 외신들은 시 주석이 대두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해 양안(兩岸) 문제와 관련한 최대 실리를 얻으려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 주석 역시 중국의 경기 부진 문제로 올 상반기 ‘실각설’까지 제기됐던 만큼 대만이라는 외부 문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지난달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 주석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양안(兩岸) 문제에 대한 정책 변화를 끌어내 대만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은 대만의 독립을 반대한다’고 공식 선언하도록 압력을 가할 계획이라는 보도였다.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던 바이든 전 대통령의 선언에서 한참 더 나아간 입장을 원한다는 의미다. 시 주석 입장에서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수준이라면 다른 이유를 들면서 중국과 무력으로 대치할 수 있지만, 아예 반대하는 입장이 되면 중국에 동조해 적극적으로 대만을 압박할 수 있다. 4연임을 추진하는 시 주석은 3연임 마지막 해인 2027년까지 대만을 군사적으로 장악할 준비를 마치라고 이미 인민해방군에 지시한 상태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트럼프 행정부도 강경한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24일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곧 발표할 새 국방전략(NDS)에도 대만 방위 노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담을 예정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NDS는 ‘미국 본토 방위’와 ‘중국의 대만 제압 억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으면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상륙 작전을 개시할 경우 미군이 개입해 이를 저지한다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담는다.
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차관보로 지명된 한국계 미국인 존 노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도 이달 7일 미 상원 인준청문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인태 지역 안보 우선순위는 여전히 심각한 군사적 위협으로 남아 있는 중국을 억제하는 데 둬야 한다”며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다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고 대만에 대한 강압적 활동과 공세적 군사 태세로 인해 지역 내 국가들 사이에 심각한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들이 자국의 국방 지출을 대폭 증액하고 독립적으로 작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해 미국과의 관계를 진정한 ‘부담 분담 동맹’으로 전환하도록 할 것”이라며 “한국은 많은 역량을 대중국 억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중 정상회담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본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6~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27~29일 일본을 방문해 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29일 오전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동선을 유력하게 전망하고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이튿날 시 주석과 회동한 뒤 오후쯤 출국하는 일정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그전까지는 미국산 대두를 지렛대로 시 주석과 신경전을 치열하게 이어갈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달 17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성사 여부는 미국산 대두와 보잉 항공기 구매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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