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관광 진흥 성공이 주는 교훈

인구가 감소하는 경제가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일까. 일할 사람이 부족해져 산업활동이 위축된다거나 고령화로 사회복지 비용이 많이 늘어나는 것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인구 감소가 불러올 내수 시장 붕괴다.
일찍이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실상을 파악하기 쉽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묘사되는 일본의 디플레 경제는 소비 인구 감소에 따른 내수 시장 침체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일본이 내수 시장 붕괴의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고 고안해낸 것이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 내수를 살리려는 인바운드 관광전략이다.
인구 감소 따른 내수 침체 우려에
인바운드 관광 전략 구사한 일본
지역 주도형 관광정책 펼치면서
외국인 3700만 명 방문 최대기록
부처·지역 협력체계 구축하고
지역 공항 활용 전략도 모색해야

일본의 인바운드 관광정책 중심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있었다. 아베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전 부처 각료가 참여하는 ‘관광입국 추진 각료회의’를 창설하고 스스로 의장이 돼 관광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인바운드 관광객은 경제 성장의 엔진’이며 ‘관광 입국은 지방 창생의 기폭제’임을 8년의 집권 기간 내내 역설하고 다녔다. 제로 성장과 지역 소멸의 두 가지 위기에 동시에 대처하는 데 인바운드 관광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아베의 독려를 바탕으로 정부 각 부처는 입국 절차의 획기적 개선, 디지털 관광 인프라 확충, 면세 제도 확대, 국가 문화재의 관광 자원화 등 혁신 과제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도장과 팩스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을 만큼 변화에 거부감이 큰 나라 일본에서 관광 분야만큼은 상전벽해라 할 만한 변화를 끌어냈다.
지역 소멸 대응을 위해 지역 주도형 관광정책을 편 것도 절묘한 수였다. 외국 관광객이 도쿄와 오사카에만 들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지역과 지방 구석구석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유기적으로 연계해 지역 특색을 고도화하고 공항 등 관광 교통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등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인바운드 관광 전략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설 당시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 수가 한국보다도 적은 1000만 명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인바운드 관광객은 370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관광, 지역 소멸 대응에도 효과적
지역 주도형 관광정책의 성과도 괄목했다. 도쿄와 오사카뿐 아니라 후쿠오카와 홋카이도·오키나와 등 지방에도 외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들 지역이 얼마나 핫한 곳이 됐는지는 해당 지역의 최근 10년간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전국 47개 도도부현 중 1·5·6위를 기록한 것으로 증명된다.
일본의 이런 눈부신 성과에 비하면 우리의 성적은 초라하다. 일본보다 많았던 인바운드 관광객 숫자는 지금은 일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그렇게 됐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인바운드 관광에 대한 양국의 정책 관심도 차이에 있다. 정부가 총력을 다해 인바운드 관광정책을 밀어붙인 일본과는 정반대로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책 관심도가 줄어들었다. 대통령 주재 관광 진흥 회의는 총리 주재로 내려앉았고 청와대 관광진흥비서관 자리는 없애버렸다. 더 이상 대통령이 관광정책 컨트롤타워를 직접 주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담당 부처 이름(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광이 문화와 체육에 이어 부서의 세 번째 서열인 것만 봐도 관광정책 컨트롤타워의 위상이 약화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관광청을 별도로 만들어 교통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성 산하에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과 일본 간 격차가 확대된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이 지역 주도형 관광정책을 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중앙 중심의 정책에 집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정책은 심하게 말하면 ‘K팔이’에 의존한다. 모든 관광정책에 ‘K○○’가 붙는다. 효과는 만점이지만 효과의 범위는 서울 중심으로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 집중 현상이 과도하다. 외국 관광객이 한국을 찾아도 서울에서 짧게 머물고 떠나는 식의 여행이 되고 만다. 서울에 의존해 외국 관광객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과 일본 인바운드 관광정책의 현실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공항 활용 실태다. 일본에는 전국에 97개의 공항이 있다. 일본은 이들 지역 공항을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필요에 따라 국제공항으로 개편해 적극 활용했다. 원래 국제공항이었지만 국제선 용량이 작고 협소했던 삿포로와 오키나와·후쿠오카 공항은 늘어나는 외국 관광객에 발 빠르게 대응해 대폭 확충했다. 정부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유기적 협력을 바탕으로 기민하게 대응해 공항 활용을 극대화하고 외국 관광객의 지역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우리나라에는 15개의 공항이 있다. 이 중 외국인 공항 입국자의 83%가 인천과 김포공항을 이용한다. 김해와 제주공항을 이용한 외국인 입국자는 각각 8%다. 나머지 공항은 외국인 관광객이 전무 하다시피 하다. 7개 공항은 우수한 지역 관광 자원을 배후에 두고도 아예 국제공항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서울에 의존한 관광정책, 한계 분명
지방의 관광 자원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교통 접근성이 부족한 것이다. 포화 상태인 김해공항과 제주공항의 확충은 요원하다. 있는 공항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필요한 공항은 짓지를 못한다. 한국과 일본 관광정책 역량 차이의 현주소다.
인바운드 관광 산업은 반도체 산업만큼이나 우리 경제에 중요하다. 내수 시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영업과 중소기업 비중이 큰 우리 경제는 내수 시장 붕괴의 충격이 아주 크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 고통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일본의 지난해 인바운드 관광객의 총 소비액은 8조 엔으로 자동차 산업 수출액에 이어 수출 규모 2위를 기록하며 수출 효자 산업이 됐다.
이제 우리도 인바운드 관광정책 전반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인바운드 관광정책 거버넌스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사라진 대통령실 관광진흥비서관 자리를 부활시켜야 한다. 관광정책이 효과를 내려면 부처 간 유기적 협력이 필수다.
예를 들어 디지털 관광정책은 외국인 온라인 결제 및 디지털 예약 서비스 접근성 확대,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온라인 지도 서비스 규제 완화 등 타 부처와의 협력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가 수두룩하다. 인바운드 관광의 핵심 요소인 교통 접근성 개선을 위한 국토교통부와의 협력도 중요하다.
힘있는 관광정책 컨트롤타워 필요
이런 일을 문화체육관광부의 막내 조직에서 담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혁신적 관광정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에 관광정책을 전담하는 컨트롤 타워를 둘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 주도형 관광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자체 간 연계 및 협력 체계를 재구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 편의를 위해 쪼개 놓은 행정구역이 관광정책을 펴기 위한 지역 단위로는 적합하지 않다. 도 단위 규모는 지역 특화 관광 전략을 짜기에 너무 크다. 군 단위 규모는 너무 작아 인적·물적 자원 투입 역량이 떨어지고 지역 간 연계 전략을 짜기에도 부적합하다. 전국에 유행처럼 설치된 특색 없는 250개가 넘는 출렁다리는 지자체 간 각개약진식 경쟁의 결과다.
일본은 현 단위 중심의 지역 특화 관광정책이 이뤄지고 있는데 43개 현의 평균 면적이나 인구 규모가 우리나라의 도보다는 작고 군보다는 훨씬 크다. 지역 특화 전략을 펴기에 우리나라의 경우보다 유리한 조건이다.
우리의 행정체계를 당장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핸디캡을 보완하기 위해 지자체 간 연계를 꾀하는 협력 행정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우선 군 단위 간 또는 광역 지자체 간 불필요한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더 나아가 관광 자원을 중심으로 지자체 간 연계 협력 조직을 별도로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을 조율하기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도 필요하다.
셋째,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전국을 관광 자원화하기 위해 전국 공항의 활용 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일본 공항 97개 중 30개가 넘는 곳에 국내 항공사가 취항한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일본 소도시 공항까지 간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항공사 유치 정책의 결과다.
그 결과 국내 관광객 유치를 놓고 한국의 지방 도시와 일본 지방 도시가 경쟁하는 형국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고사하고 내국인 관광객의 해외 유출도 심각한 것이다. 올해 상반기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500만 명에 육박한다. 반면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은 160만 명에 불과하다. 그것도 서울 등 대도시 중심이다.
전국 공항 이용해 교통 접근성 확보해야
우리도 포항과 경주·여수·군산 등 가까운 곳에 공항을 끼고 있는 우수한 관광 자원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외국인 교통 접근성이 떨어져 인바운드 관광 자원으로서 치명적 약점이 있다. 이제라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지방공항을 인바운드 관광의 접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무안공항 참사가 지방공항 무용론으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방공항 활성화를 통해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미래지향적 대응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K컬처와 함께하는 관광 매력 국가’라는 거창하고 추상적인 행사에 몰두할 때, 일본은 관광청장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일본의 숨은 보석을 찾아서’를 주제로 일본 구석구석을 돌아보라는 홍보 행사에 열을 올린다. 한국과 일본 관광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단면이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떴다고 마냥 좋아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케데헌’을 서울 관광 홍보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전국 곳곳을 알리는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인바운드 관광 업그레이드를 위한 관광정책의 대개혁이 시급하다.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