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이번 주말부터 최장 9일의 황금연휴가 시작됐습니다. 해외로 떠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낯선 여행지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찾는 것이겠죠. 이때 가장 많이 쓰는 앱은 구글맵으로, 무려 매월 10억 명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둘 중 한 명(56.2%)은 네이버 지도를 씁니다(2023년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구글맵(33.9%)을 넘는 인기죠.
이렇게 구글보다 막강한 자국 지도앱을 쓰는 나라는 단 3개 국가예요. ‘바이두 지도’를 가진 중국, ‘얀덱스 지도’를 가진 러시아, 그리고 네이버 지도를 가진 한국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정부의 인터넷 규제나 시장 특수성으로 외부 서비스의 진입이 어렵다면, 우리나라는 무슨 이유일까요. 공간정보관리법으로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기업이 반사 이익을 누리는 상황인 거죠.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간 지역 기반 데이터로서 지도맵이 어떤 다양한 시도를 이어갔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오늘 비크닉에서는 네이버 지도의 성공 비결로 이 부분을 알아볼게요.
한국인 5명 중 3명 사용…인스타그램보다 많이 쓴다
우리나라에 온라인 지도 서비스가 등장한 건 2000년대예요. 1990년대 중반 정부가 나서 국가 지리 정보 시스템(GIS)을 구축하면서 종이로 된 두꺼운 지도책은 서서히 사라지고, 티맵(2002)을 비롯해 네이버 지도(2008)∙카카오맵(2008) 등이 나타났죠.
이 중 네이버 지도는 후발 주자였지만 현재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지난해 카카오톡∙유튜브∙네이버∙쿠팡에 이어 2024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앱 5위(2802만명)에도 올랐는데, 인스타그램(2503만명)보다도 많은 숫자죠. 지도 플랫폼인 카카오맵(1070만명)∙구글맵(905만명)과 비교해도 훨씬 인기가 높습니다(와이즈앱·리테일·굿즈).
리뷰∙예약∙장소 확인을 한 번에…‘장소 커뮤니티’ 형성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도라고 해서 단순 길 찾기 서비스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미 지하철·자동차 길 찾기만 전문으로 하는 서비스는 많고, 대중교통 도착 예정 시간을 초 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도 있으니까요.
대신 찾은 차별점은 ‘장소 커뮤니티’였습니다. 지역 사업자는 가게 정보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후기를 남기며 온라인으로 소통하죠.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인공지능을 통해 주변 맛집∙볼거리∙놀거리 추천에 활용됩니다. 또 내가 보증하는 맛집이나 가볼 만 한 공간들을 지도에 기록해 공유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전국 떡볶이 맛집 지도부터 강아지 숙소 지도까지 다양한 주제가 가능하다 보니 저장 자체가 하나의 놀이로 여겨지죠.
이런 커뮤니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지난 2015년 시작한 ‘스마트플레이스’ 서비스 덕분입니다. 지역 사업자가 가게 정보를 관리하고 예약 및 주문, 쿠폰 등록 등을 할 수 있는 기능인데, 중·소상공인이 온라인에서 사용자를 만나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대요. 등록 업체는 약 256만개에 달해요(2024년 12월 기준). 서비스 운영 10년 만에 얻은 성과죠.
가짜 후기부터 별점 테러까지…후기 제도 10년 수난사
스마트플레이스 기능이 지난 10년 동안 순탄하게 운영됐던 것만은 아닙니다. 상인들 사이에서 별점과 후기 경쟁이 심화하면서 가짜 후기나 광고 및 협찬성 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죠. 지난 2019년 특정 장소를 실제로 가보고 영수증을 인증한 뒤 후기를 남기는 ‘영수증 리뷰’ 기능이 추가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리뷰 문제는 끝나지 않았어요. ‘별점 테러’ ‘리뷰 갑질’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별점 중심 리뷰 제도가 악성 소비자를 양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그러자 네이버 지도는 2021년, 식당·카페 대상 별점 제도를 없애고 장소의 특·장점 키워드를 선택해 리뷰를 남길 수 있게 만들었어요.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면서까지 지도 플랫폼에 장소 관리 기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마트플레이스 기획자는 “이동부터 목적지 도착까지 여정 전반을 한 플랫폼 안에서 경험하도록 만들고, 소상공인을 사용자와 온·오프라인으로 연결해 ‘로컬 정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물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이득입니다. 네이버 지도는 장소 정보 데이터를 유료로 제공하기도 하고, 지도 노출 광고로 수익을 올릴 수도 있죠.
한국 여행 중 가장 만족한 앱 1위…올인원 플랫폼이 이유
네이버 지도가 방한 외국인의 필수 앱이 된 이유도 한국인이 쌓은 장소 데이터 덕분입니다. 앞서 소개한 문체부 조사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여행 중 가장 만족한 앱 1위(27.8%)로 네이버 지도를 꼽았는데, 하나의 앱으로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검색(54.2%)할 수 있다는 점이 이유였어요.
이렇게 외국인 이용자가 늘자 네이버 지도는 아예 외국인 대상 서비스를 확대합니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한 외국인을 위한 다국어 지도를 처음 선보였는데, 지난해 10월부터는 영어∙중국어∙일본어로 장소 리뷰까지 볼 수 있게 됐죠. 외국인도 이제는 손쉽게 예약∙포장을 할 수도 있어요. 네이버 지도는 올해 다국어 검색과 예약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해요.
규제 덕분 승승장구?...글로벌 경쟁력 가지려면
네이버 지도의 성공을 두고 일부에선 국내 규제로 득을 봤다고 해석합니다. 구글맵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 제대로 된 경쟁이 없었다는 겁니다. 최진무 경희대 지리학 교수는 “분단 특수성과 안보 문제 등의 우려로 지도 데이터 유출을 막은 것”이라면서도 “관광 업계에선 산업 발전을 막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난해 11월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심사 체계’ 개선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죠. 법안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네이버 지도는 해외 빅테크 플랫폼과 경쟁하게 될 거예요.
현재 네이버 지도는 장소 데이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서비스를 준비 중이에요. 예를 들어 사용자 리뷰를 바탕으로 식당의 대표 메뉴와 강점·약점을 분석해 업체에 피드백을 주는 거예요. 일종의 컨설팅 기능이죠.
길 안내 서비스도 발전할 거예요. VR·AR 기술을 접목해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거래요. 미래 길 찾기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장소 기반 데이터는 어떤 방식으로 활용될지 지도 플랫폼의 확장 가능성이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