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수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2025-03-12

약국이 개·고양이 약을 판다. 마취제, 호르몬제, 항생항균제, 생물학적제제 등 종류도 가지가지다. 코로나·인플루엔자 사독백신 등 주사제도 수의사 처방 없이 약사가 판매한다.

반려동물이 실험동물이 돼버린 셈이다.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은 약의 부작용도 호소할 수 없다.

약사는 사람약 전문가다. 동물약은 수의사가 전문이다. 약국의 새로운 수입창출 욕구와 반려동물 주인의 ‘귀차니즘’이 맞아떨어진 시장 왜곡의 현장이 바로 ‘동물약 파는 사람약국’이다.

수의사는 동물을 시진, 청진, 타진, 촉진한다. 주인을 문진하기도 한다. 진찰 후 처방이 정확할 수 밖에 없는 체제다.

반면, 약사는 ‘내 개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주인의 자가진단만 믿고 약을 내놓는다. 위험하고 위태롭다.

이게 다 ‘약사법’의 독소조항(제85조 제7항) 탓이다. 수의사를 건너 뛰고 누구나 약국에서 동물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수의사의 처방을 생략한 채 동물약품을 유통할 수 있도록 약사법에 예외를 부여했다. 동물용 실데나필을 사다가 남성용 ‘비아그라’로 오남용하는 것마저 가능할 지경이다. 이런 약국이 전국에 1만5000곳 이상이다.

수의사들은 동물판 의약분업에 찬성하지 않는다. 동물병원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법을 바로잡아야 동물병원이 정상 가동되고, 동물병원이 제 기능을 해야 아픈 동물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약사가 수의사를 동물약품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 동물병원 말고 약국으로 오라고 호객하는 약사들이 증가일로다. 약대의 동물용의약품 교과목을 확대하고 동물약 전문약사를 양성해 약사가 동물약을 조제토록 하려는 움직임마저 감지된다.

동물병원은 수술과 내과진료만 하라는 우격다짐이나 다름없다. 의약품을 내 준 동물병원은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개와 고양이와 그 주인이 사람약국을 찾는다면 동물병원의 미래는 없다.

수의사 단체들이 나서야 한다. 약사법 개정 투쟁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와 농식품부에 약국의 부당함을 알리고 단속 강화를 촉구해야 한다. 수의사에게만 공급하는 동물약품을 약국 매대에 진열해 팔고 있는 행태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

수의사는 동물용의약품을 제외한 인체용의약품은 사용만 할 뿐 판매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약사가 동물용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허용하는가. 동물에 관한 한 ‘수의사법’이 ‘약사법’ 위에 있다고 본다. 약사법은 강도 프루크루테스, 수의사법은 그 침대에 묶인 나그네 꼴이다.

“동물학대를 유발하는 무분별한 약품 판매가 개선되기를 바라고 동물약품을 판매하는 곳에서도 해당 행위가 사용자의 오남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며 동물의 보호자 역시 선의로 행한 행위가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대한수의사회의 어필은 한가롭고 점잖다.

현 시점 동물병원 수의사들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의사는 이미 20여년 전 어의사(수산질병관리사)에게 물고기 등 수산생물 진료를 내줬다. 이번에는 동물약품까지 약국에 헌납한 ‘실패를 잊은 백성’으로 연명해야 하나.

남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 남 또한 내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 개와 고양이를 기르는 시민들도 당장의 편리만 좇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신근 서울 윤신근박사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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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수의사 #동물병원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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