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서 외로움 사무친 엄마
당신이 떠나온 바다 보며 눈물
아이들은 우는 엄마 못 본 척해
내 엄마도 혼자 운 적 있었을 듯
주노 디아스 ‘겨울’(‘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에 수록, 권상미 옮김, 문학동네)
겨울이 오면 주노 디아스의 단편 ‘겨울’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 이유가 추운 계절 때문인지 ‘엄마’의 뒷모습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이야기만큼이나 하나의 인상(印象)과 이미지가 마음에 남는 단편소설이 있다. ‘겨울’을 읽고 난 뒤로는 겨울밤 코트를 입고 혼자 집을 나가 큰길 가에서 자신이 떠나온 곳, 가고 싶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선 엄마의 쓸쓸한 뒷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고향 도미니카를 떠난 지 오 년 만에 아버지는 가족을 미국으로 불렀다. 나, 유니오르와 형과 마미를. 아파트 단지에는 유색인종들만 보였고 아직 전선 작업도 안 된 상태에다 바닥은 진흙탕이었다. 아버지는 이 동네가 빈민가가 아니며 점잖은 사람들이 살고 주변의 모든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형제에게 주의 주었다. 그러곤 영어도 못 하고 문화도 모르니 집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하고 불안하게 느껴져서인지 아버지는 모두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마미는 닦은 데를 또 닦고 손이 많이 가는 밥을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이 단편은 “우리 동네 큰길에 웨스트민스터 대로 꼭대기에서는 수평선 동쪽 끝에 걸쳐 있는 대양을 아주 가느다랗게 한 조각이나마 볼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정작 형제와 마미에게는 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게 한다는 목적으로 밖에서 뛰어노는 것밖에 관심이 없는 형제를 텔레비전 앞에 앉혀 두고 아버지는 출근한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벽장에는 기름때가 묻은 유니폼들이 걸렸고 주 50시간씩 근무한다. 아버지가 없는 사이 형제와 마미는 너무나 추운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영어를 듣거나 창밖의 눈을 물끄러미 내다볼 뿐.
고향에서 마미는 가족의 사령탑이었고 요리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쉽게 기가 꺾이는 여자가 아니었는데 여기서는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형제와 아버지는 마미의 영어 발음을 창피해했고, 마미에겐 찾아갈 친구도 이웃도 없었다. 우울해하고 슬퍼하는 마미에게 아버지가 약속했다. 겨울이 그치자마자 바다를 보여주겠다고. 마미가 물었다. “겨울이 얼마나 더 남았는데요?” 겨울이 가면 친구와 이웃이 생기고 고향의 친척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은 듯. 마미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고” 가끔은 자식이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형보다는 세심한 나, 유니오르가 먼저 마미의 변화를 눈치챈다. 잠에서 깼는데 누군가 거실을 걸어 다니는 기척이 들렸다. “뒤쪽 테라스 유리문 앞”에 마미가 외롭게 서 있었다. 미국에 온 지 삼 주째. 형제들은 아버지 몰래 눈밭에 나가 잠깐씩 놀지만, 마미는 여태 집안에만 있는 중이었다. 그다음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을 땐 마미가 코트를 꺼내 걸치곤 현관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우릴 버리고 떠나려는 걸까?” 내가 묻자 형이 이때만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엄마한테 잠시만 시간을 줘보자.” 그리고 겨우 이 분 후, 냉기를 뒤집어쓴 마미가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폭설로 아버지 귀갓길이 막히고 온도조절기도 고장 나 형제가 겁을 먹자 마미가 괜찮을 거라고 위로하며 잠들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잠결에 또 나는 문소리를 듣곤 형을 깨웠다. 형은 비장한 얼굴로 텅 빈 집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가자.” 엄마는 주차장 끝자락에서 “웨스트민스터 대로”를 건너려는 참이었다. 바람에 눈발이 이렇게나 흩날리는데. 엄마와 어린 아들들은 대로를 건넜다. 똑바로 가라고 마미가 말했다. “길 잃어버리지 않게.” 그들은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대로 꼭대기에서 바다를 보았다. 길고 굽은 칼날 같은 바다를. “마미는 울고 있었지만 우리는 못 본 척했다.”
우는 엄마를 못 본 척할 줄 알 때 자식은 철이 들어가는 걸까. 어쩌면 마미도 자식들이 울 때 못 본 척했을지도. 가끔 내 어머니가 혼자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들 때가 있다. 어머니가 나에게 그런 때가 있다는 걸 귀신같이 알 듯. 서로서로 못 본 척한다. 그러니 올겨울엔 이런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지.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누는.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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