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죽음 뒤 남겨진 것들…영화 ‘콘클라베’

2025-02-24

영화는 주인공의 거친 호흡으로 시작한다.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애도를 할 새도 없다. 교황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어떻게 낼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가 오간다. 새로운 권력의 선출을 위한 작업도 즉시 시작된다. 교황청은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준비에 들어가고 로렌스는 단장으로 선거를 총괄하게 된다. 강한 비트의 배경음이 이어지고 무언가 불안해 보이는 배우의 얼굴이 자주 클로즈업 된다. 어딘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영화 초반부터 형성된다.

이어지는 전개는 권력 암투를 다루는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된다. 콘클라베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추기경들이 모여든다. 로렌스를 비롯해 자유주의 진영이 지지하는 벨리니(스탠리 투치)를 비롯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아데예미(루시안 음사마티) 등이 유력 교황 후보로 언급된다. 라틴어를 공용어로 할 것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 테데스코(세르지오 카스텔리토)와 중도 성향의 트랑블레(존 리스고)도 교황 자리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특정 후보 없이 과반수를 넘긴 후보자가 나타날 때까지 제한 없이 투표하는 콘클라베 특성상, 계속해서 진행되는 선거 과정이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성추문, 매관매직 등 현실 사회에서도 문제로 지적된 교황청의 비리들이 후보자들의 추문과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유력했던 후보가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하고, 눈에 띄지 않았던 후보가 급부상하기도 한다.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레 베니테스 추기경(카를로스 디에즈)에게 옮겨간다.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사역을 하다 온 그는 교황의 선종 전까지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추기경이었다. 전쟁과 기아 등으로 소외된 지역에서 종교적 사명을 다해 온 그의 이력은 이념에 매몰돼 정파적인 투표를 이어가고 있는 추기경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남성들의 세계인 교황청 안에서 콘클라베의 진행을 돕는 수녀들의 모습도 간간이 비친다. 인종과 이념의 갈등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도 여성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리는 상황은 수녀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교회의 한계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자처럼 여겨지는 수녀들의 노력에 대해 처음 감사를 표한 것 역시 베니테스라는 점은 영화의 반전과 연결되며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극적인 전개가 계속되기 때문에 120분의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주요 배역의 연기도 흡입력이 높다. 영화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 역으로 유명한 랄프 파인즈는 이번 영화에서 극 전체를 장악하는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주며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제의 남우 주연상 유력 후보로 꼽힌다. 영화 내 단 7분 51초만 등장한 이사벨라 로셀리니도 강한 존재감을 남기며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바티칸의 오래된 건축물과 이곳에 모여있는 추기경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출 때는 정제된 화면 속에서 아름다운 영상미가 느껴진다. 영화 전반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이 많이 사용됐다. 감정을 격앙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다소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콘클라베’를 원작으로 했다. 올해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영국 아카데미에서 각각 각본상과 작품상을 받았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을 비롯해 8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오는 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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