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 3경기 45안타 10홈런 38득점. 잔뜩 불붙은 삼성 방망이를 식힌 건 NC 신민혁(26)의 ‘느린 공’이었다.
신민혁은 26일 대구 삼성전 선발 등판해 5이닝 2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됐다. 전날까지 삼성 타선은 개막 3경기에서 만난 선발 투수 3명을 모두 경기 극초반에 무너뜨렸다. 키움 케니 로젠버그와 하영민이 각각 3이닝 8실점, 3이닝 5실점으로 강판됐다. 25일 NC 선발로 나온 최성영은 1.2이닝 5실점으로 2회를 채우지 못했다. 신민혁이 이번 시즌 삼성 타선을 이겨낸 첫 선발 투수가 된 셈이다.
신민혁은 이날 1~3회를 출루 없이 막았고, 4회 2실점 했지만 5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자기 책임을 다했다. 투구 수 77개로 여유가 있었지만, 지난해 9월 팔꿈치 뼛조각 수술 이후 시즌 첫 등판인 걸 감안해 교체됐다. NC는 이후 불펜진이 4실점 했지만, 6회에 일찌감치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하며 타선이 폭발한 덕에 삼성을 8-6으로 꺾었다.
이날 신민혁의 직구는 최고 143㎞, 평균 141㎞를 기록했다. 수술 이후 구속을 회복했다고 하지만, 리그 전체로 따지면 여전히 느린 편이다. 이날 신민혁은 직구 13개만 던졌다. 대신 커터(23개)와 체인지업(39개)을 앞세워 카운트 싸움을 했다. 신민혁의 커터는 좌타자 기준 몸쪽으로 파고들고, 체인지업은 바깥쪽으로 흘러나간다. 상대 타자의 시선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조합이다. 여기에 다시 속도로 변주를 준다. 이날 신민혁의 체인지업은 시속 99㎞~129㎞로 형성됐다. 체인지업 한 구종만 해도 속도 편차가 30㎞가 났다. 140㎞ 초반 직구와 130㎞ 중반 커터의 위력을 배가할 수 있는 밑바탕이 체인지업이다. 여기에 시속 105㎞ 느린 커브까지 가미했다.
신민혁은 이날 5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아냈다. 내야 뜬공도 4개를 유도했다. 4회 2실점 후 계속된 1사 3루 위기에서 르윈 디아즈를 2구 만에 2루 뜬공으로 처리했고, 김영웅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추가 실점을 막았다. 초구 137㎞ 커터와 2구 127㎞ 체인지업을 존 위아래로 꽂아 2스트라이크를 잡았고, 3구째 142㎞ 직구로 김영웅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코스와 구속 변화를 통한 타이밍 싸움의 승리였다.
신민혁이 라이온즈파크에서 삼성 타선을 잠재우는 동안, 잠실에서는 LG 임찬규가 100구 완봉 생애 최고 투구를 했다. 임찬규 역시 공이 빠른 투수는 아니다. 지난 시즌 직구 평균 구속(120이닝 이상)으로 따졌을 때 신민혁이 리그 전체에서 가장 느렸고, 임찬규는 3번째로 느렸다. 이날도 임찬규는 직구 평균 구속 139㎞에 그쳤지만, 슬로 커브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활용해 한화 타자들과 타이밍 싸움에서 이겼다. 염경엽 LG 감독은 경기 후 “완급조절의 최고점을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시즌 초반 KBO리그 10개 구단 직구 평균 구속은 145㎞를 웃돈다. 파이어볼러들이 즐비한 한화는 팀 평균 직구 구속이 148㎞에 이른다. 빠른공은 투수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150㎞ 빠른공이 아니라도 투수가 살아남을 길은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