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노의 레오 재계약 포기 ‘나비효과’… 현대캐피탈의 ‘7시즌 만의 정규리그 1위‘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2025-02-23

나비효과.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 22일 우리카드전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통해 남은 6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2024~2025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 1위를 조기 확정한 현대캐피탈의 성공은 ‘나비 효과’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에게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 해당하는 것은 OK저축은행 오기노 감독의 레오와의 재계약 포기였다.

레오가 누군가. V리그 역대 최고의 외인으로 꼽히는 선수다. 2012~2013시즌 삼성화재 소속으로 한국땅을 밟은 레오는 세 시즌 동안 V리그 코트를 초토화시켰다. 세 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와 2년 연속 챔프전 MVP를 수상한 뒤 해외리그로 떠났다. 튀르키예,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뛰던 레오는 2021~2022시즌 트라이아웃을 통해 다시 V리그에 입성했고, OK저축은행 유니폼을 입고 2023~2024시즌까지 뛰었다.

20대 초중반이었던 삼성화재 시절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레오는 여전히 트라이아웃에서 뽑을 수 있는 최고의 외인이었다. 2023~2024시즌엔 그야말로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으로 OK저축은행의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레오의 공격비중을 줄인 3라운드에 전패를 당했다가 그의 공격 점유율을 급격히 끌어올리자 OK저축은행은 4라운드 전승을 거뒀다. 이를 발판으로 정규리그 3위로 마친 OK저축은행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프전까지 올랐다. 언제든 고공강타를 때려줄 수 있는 레오의 존재감에 힘입어 챔프전 준우승까지 따냈지만, 오기노 감독은 시즌 종료 후 레오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배구, 자신의 배구 철학을 실현하겠다며 트라이아웃 수준에서 뽑을 수 있는 최고의 외인을 내쳐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는 분명 오기노 감독의 오판이었다. 가뜩이나 챔프전 준우승으로 트라이아웃 지명권 추첨에서 넣는 구슬 숫자도 적은데, 레오보다 더 나은 기량의 선수를 뽑을 가능성은 한없이 작았다. 그럼에도 오기노 감독는 팀 성적보다는 자신의 배구철학 관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레오를 시장에 내놓았다.

레오의 트라이아웃 시장 등장에 지난해 5월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현장은 크게 술렁였다. 레오를 품은 것은 지난 시즌 4위에도 2순위 지명권을 따낸 현대캐피탈이었다. 우승팀임에도 3.57%의 낮은 확률을 뚫고 1순위 지명권을 따낸 대한항공이 요스바니(쿠바)를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2순위 지명권의 현대캐피탈은 고민도 할 것 없이 레오를 지명했다.

현행 트라이아웃 제도에선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곧 토종 선수층이 탄탄한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다. 대한항공의 통합우승 4연패는 세터 한선수를 위시로 정지석, 곽승석이라는 탄탄한 코어 라인이 뒷받침해준 가운데, 고만고만한 외인을 뽑아야 하는 트라이아웃 제도의 수혜를 본 게 컸다.

대한항공과 더불어 토종 선수층은 가장 탄탄한 현대캐피탈에게 있어 레오의 합류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나 다름없었다. 토종 NO.1 공격수로 거듭난 허수봉과 레오의 ‘쌍포’가 이끄는 현대캐피탈은 시즌 내내 독주했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정규리그 1위 확정이라는 최고의 결과가 도출됐다.

레오는 오기노 감독 보란 듯이, 올 시즌에도 최고의 외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득점 2위(584점), 공격 종합 4위(54.43%), 오픈 1위(46.50%), 퀵오픈 2위(60.66%), 후위 공격 3위(57.06%)에 오르며 허수봉과 함께 현대캐피탈의 공격을 함께 이끌었다.

레오에게도 현대캐피탈 입성은 V리그에서 처음으로 ‘행복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삼성화재에서 3년, OK저축은행에서 3년을 뛰는 동안 레오는 항상 점유율 40% 이상, 많을 땐 50%를 훌쩍 넘는 공격을 혼자 책임져야 했다. 삼성화재 시절 한 경기에 무려 77%의 공격을 책임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올 시즌 현대캐피탈에는 레오 혼자 공격을 다 때리지 않아도 된다. 허수봉과 신펑, 전광인까지 최고 수준의 날개 공격수들과 함께 최민호, 정태준의 미들 블로커들도 요소마다 속공을 때려준다. 덕분에 올 시즌 레오의 한 경기 최다 공격 점유율은 지난해 11월10일 삼성화재전의 44.71%에 불과하다.

레오에게도 V리그에서의 챔프전 우승은 10년이 넘었다. 삼성화재 2년차 시절인 2013~2014시즌이 마지막이다. 과연 레오는 현대캐피탈에서 11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챔프전에서는 에이스에 대한 의존도가 정규리그보다 훨씬 높아진다. 레오에게는 바라는 바다. 레오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나는 더 많은 공을 때리고 싶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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