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려 디엠지숲 대표
파주 통일촌 정착 이후 사들여
수년간 가꿔 개성만점 숲 조성
숲체험·테라리엄 프로그램 인기
산림청 국가공모 사업 선정도
“민통선 내 새 마을 생기길 바라”
“이끼를 키우기 시작하면 지렁이가 생겨요!”
‘지렁이’ 얘기에 ‘찐웃음’을 숨기지 못하는 주인공은 경기 파주 민통선 내에서 ‘디엠지숲’을 이끌고 있는 임미려(41)씨다. “지렁이가 생겨야 땅심이 생기거든요!” 그가 화려한 꽃밭 대신 수년 공들여 이끼와 고사리를 가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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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20㎞를 동서로 이은 선 안쪽 구간. ‘민간인통제구역’이라 불리는 이곳에 보물 같은 숲이 있다. 사전 허가를 받고 군 검문소를 통과해, 내비게이션도 되지 않아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오면, 물기를 머금은 이끼가 겨울에도 녹색으로 반짝이는 정원과 유리온실 두 동이 나타난다.
누군가는 이곳을 대관해 강연장으로 쓰기도 하고, 단체로 요가와 명상을 하기도 한다. 이 숲 속에서 키운 농작물로 요리를 하거나 유리병 안에 이끼를 담아 테라리엄을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도 이따금 진행됐다. 외부인에게 ‘민통선 숲체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대학 시절 환경프로그램 VJ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연이 주는 평안의 힘에 푹 빠졌던 임 대표는 산과 관련한 일을 하다 아예 귀촌을 결심했다.
“파주에 와 부동산을 돌다 매물로 나와 있는 산 하나를 덥석 구입하기까지가 2016∼2017년 시기예요.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 위협하며 긴장감이 높았어요. 전쟁 난다 소리가 나오던 때라 엄청 쌌죠.”
다들 말렸지만 그는 “이번엔 사고 쳐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했다고 한다. 민통선 내 이미 형성돼 있던 마을인 통일촌에 거주하며 약 5만㎡ 규모의 야산을 구입해 산을 가꾸기 시작했다. DMZ 옆 산이라고 하면 막연히 천혜의 환경이 멋지게 보전됐을 거라 추측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 중엔 포탄으로 불이 났고, 전쟁 후엔 군이 시야 확보를 위해서 주기적으로 불을 냈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은 게 참나무고, 참나무에서 자란 게 표고버섯이에요. 단조로우면서도 역사적 배경이 있는, 특징적인 생태환경이 생겨났죠.”
임 대표는 이런 특징을 살려 나무를 정리하고 다양한 이끼를 정착시키면서 개성 있는 숲을 가꿨다. 처음엔 전기도, 수도도 없었고 인터넷도 자비로 300만원을 들여 설치했다고 한다. 버려졌던 야산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특별한 숲으로 완성해갈 때쯤인 2022년, 관광농원으로 산림청 국가공모 사업에 선정됐다. 외부인에게 숲체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하나씩 시도했고 그때마다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남과 북이 대치하는 곳,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는 경계의 공간이자 동시에 공존을 모색하는 공간”이라며 “민통선 산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곳의 의미를 살리면서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공간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임 대표는 “중장기 목표로는 이곳에 다음 마을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전후 대성동 마을이, 70년대 통일촌이, 2000년대 해마루촌까지, 파주 민통선 내 3개 마을이 약 20년 간격으로 만들어졌다”며 “이제 그다음 순서가 올 텐데, 그 마을은 어떤 콘셉트를 가진 마을이어야 하는지, 그걸 준비하는 베이스캠프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파주=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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