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세상 휩쓸자 잊힌 ‘여성 의제’

2025-03-09

12·3 비상계엄 이후 여성들이 광장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지만 역설적이게도 계엄 사태로 인해 ‘여성 의제’에 관한 관심은 더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8월 ‘36주 임신중지 유튜브 영상 논란’을 계기로 낙태죄 보완 입법 등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논의가 조명을 받았다. 한 유튜버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자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여성계는 “2019년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된 뒤 아무 대안도 마련되지 않아 이러한 사태가 야기됐다”고 지적하며 제도 보완을 촉구했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는 “여성단체들이 계엄 직전 모자보건법 전부 개정안 등과 관련해 복지부, 정치권과 간담회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계엄 이후 논의들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나영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여성들이 낙태죄 폐기를 요구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끌어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성 권리를 위축시키는 방향의 정책 제안들이 이어졌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해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정책 관련 논의도 사그라들었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명이 들어왔다.(사진) 이 중 2명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용불안 등으로 이탈했다가 붙잡혀 강제출국됐다. 정부가 저임금으로 외국인 여성 노동자를 활용하려고 제도를 졸속 추진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계엄 이후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줄었다. 배진경 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시범사업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탄핵 이후 새 정부가 세워지면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싸게 부린다’는 시각 자체를 버리고 이주노동자와 어떻게 협업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매매 집결지 여성의 탈성매매 대책 논의 역시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9월 서울 성북구 미아리 성매매 밀집지역에서 성매매 여성이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숨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 상황이 재조명됐다. 성매매 여성들은 “재개발로 인해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의 위기로 내몰렸다”며 성북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주대책을 요구했지만 서울시와 성북구는 ‘불법 추심 근절’ 위주의 대책만 내놨다. 미아리에서는 계엄이 터진 지난해 12월 재개발을 위한 철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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