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교수도 머리 흔든 ‘칸트 수능’

2025-11-20

‘공부에 왕도가 없다’는 건 낡은 교훈이다. 적어도 한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엔 해당되지 않는다. 지름길을 찾지 않고 정도만 걷다보면 수능의 높은 성취는 신기루가 되고 만다. 권위 있는 철학교수조차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고난도 문항들이 빚어내는 역설이다.

‘칸트 수능’이라 할 만큼, 유독 칸트의 난해한 철학 개념들이 곳곳에 출몰해 수험생들을 고통스럽게 한 올해 수능도 예외는 아니다. 이충형 포항공대 철학과 교수가 온라인 수험생 커뮤니티에 “수능 국어 17번 문항에 답이 없어 보였다”는 글을 올렸다. 칸트 등 철학자들의 ‘인격 동일성’에 관한 견해를 해독하는 문제로 학원가와 수험생들이 모두 최고난도로 꼽았던 그 문항이다. 유명 독해·논리 강사조차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이 교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니, 오답 여부 판단부터 능력 밖의 난제가 될 판이다.

“저 역시 지문을 이해하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이 교수가 정작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핵심은 이런 수능의 모순성일 게다. 1교시 국어는 문학·독서 각 17문항, 선택과목 11문항까지 모두 45문항을 80분에 풀어야 한다. 애초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 이해와 추론은 부차적으로 된다. 지도처럼 만들어진 지문과 선지의 길을 해독하고 풀이 공식을 적용하는 ‘기술’이 중요해진다. 논란의 17번 문항에서 제시문 속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된다. 그게 문제를 풀 키워드라는 것만 알면 된다.

실제 ‘사회와 문화’ 과목에서 자연현상과 사회문화현상 구분 문제를 풀려면 내용을 살피기 전 주어·술어부터 확실하게 찾아야 함정을 피할 수 있다. ‘화학’ 단골 킬러 소재인 전자배치 문제를 풀려면 언뜻 의미 없어 보이는 ‘10123210’ 같은 공식도 달달 외워야 한다. 2·3주기 원소들의 홑전자수다. 개념 이해도 필요하지만, 속도를 붙이지 않으면 수능을 잘 보긴 어렵다. 그러다보니 ‘1타 강사’ 능력치는 ‘노하우 공식’의 질과 수에 비례한다.

수험생들이 얼마나 ‘멘붕’이었을지 눈에 선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의신청 심사를 거쳐 25일 최종 정답을 발표한다. 문제풀이 기계를 강요하는 수능의 한계를 안다면 오답 여부에 조금은 관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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