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 사업에서 늘어나는 미청구 공사비가 잠재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이 높은 환율과 중국·튀르키예 등 후발 주자들과의 수주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기존 사업장 관리는 물론 중동 등에 집중된 수주 국가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GS건설 등은 2014년 수주하고 2023년 준공까지 마친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 4021억 원의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해외건설 미청구공사비와 미수금은 주로 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생한다. 아직 발주처에 지급을 청구하지 않았거나 청구했지만 수금되지 못한 비용이다. 일종의 ‘외상 채권’으로 건설사의 자산에 포함되지만 경기가 악화될 경우 발주처의 재정 상황이나 현지 경제 상황에 따라 대금 지급이 지연되고 회수가 어려워 상각(손실)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신용평가사들은 건설사의 해외사업장 미청구공사가 많을 경우 신용도 하락 요인 중 하나로 반영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라크 카르발라 정유공장 외에도 △파나마 메트로 3호선(1943억 원) △베트남 꽝짝1 화력발전소(2744억 원)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미청구 공사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물산은 아랍에미리트 원전(270억 원)과 카타르 LNG 수출기지 탱크(2192억 원) 프로젝트에서 미청구 공사비가 남아 있다. 포스코이앤씨의 '폴란드 소각로' 사업장은 공정률이 91%에 육박하고 있지만 1015억 원의 공사대금을 청구하지 못하고 있다.
미청구 공사금액으로 건설 현장이 멈춰선 사업장도 나왔다. 한화 건설부문이 시공하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사업장이다. 2012년 첫 삽을 떴지만 이라크 정부가 공사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약 8000억 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결국 한화는 2022년 공사를 포기하고 철수까지 결정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중심의 수주지원단이 지난해 중재에 나선 이후 잔여 공사에 대한 계약금을 상향해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도 분당급 정도 되는 신도시 공사인 만큼 건설사로선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라며 "이라크 정부의 국무회의 승인을 최종적으로 거쳐야 하는 만큼 아직 변수가 남아있다"고 전했다.
발주처의 잦은 설계변경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원자잿값이 급등하면서 치솟은 공사비도 위험 요소다. 실제로 쌍용건설은 2년 전 준공한 두바이 '아틀란티스 더 로열' 사업장에 약 101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미수금으로 잡고 있다. 발주처에 공사비를 청구했지만 일부를 정산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사실상 회사가 상각해야 하는 비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해외 건설 미수금은 총 39억 1862만 달러(약 5조 4061억 원)에 달한다. 2021년 11억 9972만 달러에서 2022년 13억 5580만 달러, 지난해 13억 6310만 달러로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경기 악화나 발주처의 재정 상황에 따른 자금 회수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수주 국가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가 발표한 해외 지역별 수주실적에 따르면 2022~2024년 기준 중동 비중은 38.4%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아시아(25.7%), 북미 등(19.3%), 유럽(10.4%) 등의 순이다. 10년 전과 비교해 북미·유럽의 비중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중동·아시아 지역 비중이 60% 이상에 달한다.
국내 기업의 해외 수주 주 무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는 트럼프 정부 2기 출범에 따라 현지 건설시장 불안도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박형진 해외건설협회 아중동·유럽실 차장은 “걸프협력회의(GCC) 건설시장은 수입 기자재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어 관세 인상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프로젝트 지연과 신규 발주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수익성을 조정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건설은 2020년 컨소시엄을 꾸려 우선 사업권을 확보한 방글라데시 메그나 대교 사업에 최종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방글라데시 측이 애초 협의했던 사업 조건을 실제 운영수입이 예상수익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에서 최소 교통량만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북미와 유럽 지역의 경우 수주액이 커지고 있지만 관계사의 반도체나 자동차 공장을 짓는 프로젝트 의존도가 높은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해외 발주처와의 단독 계약이나 직접 개발사업의 경우 국내보다 인허가 과정이 훨씬 까다로워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