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동물 트레이너는 동물만 본다? 사람 상대하는 법도 알아야죠

2025-12-14

“많은 학생이 동물을 좋아하니까 동물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사람보다는 동물과 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는 의미일 텐데요. 그런데 동물 트레이너 역시 일종의 서비스업이며 사람을 상대로 하거나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해요. 결국 사람을 대하는 스킬을 배워야 합니다.”

14년차 동물 트레이너 서지형(37) 제이클리커아카데미 대표는 중학교 1학년인 2002년에 뉴질랜드로 조기유학을 갔어요. 부모님은 미술을 전공한 그의 언니를 국내 대학에 보내면서 역시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한 둘째 딸에게 국내 입시 과정이 맞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죠.

뉴질랜드에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도 지형씨의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과연 미술을 전공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결국 진로를 변경하기로 마음먹었고 미술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요리를 선택했어요. 호주에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한 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호주 르꼬르동블루에 진학할 계획이었죠.

“전학 간 고등학교는 요리뿐 아니라 호텔매니지먼트 과정까지 공부해야 했어요. 요리를 배우고 싶은 저에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결국 고3 때 귀국해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로 또다시 전학했습니다.” 2008년 오산대 호텔조리과에 진학했던 당시는 방송 출연으로 유명 셰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요리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매우 높았어요. 그러나 얼마 안 돼 지형씨는 요리사의 꿈을 접어야 했죠. 도제식 교육이 당연하던 실습 현장에서 만난 선배 요리사의 부당한 대우로 트라우마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이듬해, 지형씨는 식품무역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조리과 출신이라 식품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영어가 가능했기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조기 취업했는데, 또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죠. 무역업은 그저 돈 버는 일일 뿐이고, ‘과연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자문했을 때 긍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았던 거죠. 그렇게 어릴 적부터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바로 동물 트레이너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2011년부터 동물 트레이너 공부를 시작했어요. 우선 반려견 전문 훈련사 교육과정인 *CPDT-KA 자격증을 목표로 했죠. 개 행동, 보호자 지도, 실전 트레이닝에 대한 이론 및 실기시험을 봐야 하는데, 당시엔 관련 교육과정이나 교재가 없었어요. 영어로 된 30여 권의 권장도서와 10개 이상의 비디오를 독학으로 공부했죠.”

CPDT-KA 이론시험은 지형씨가 응시했던 2012년에는 과정이 꽤 까다로웠습니다. 온라인 과정이 없어서 국내에서 지정된 교육감독관의 시험 감독 아래 1분에 1문제씩 풀어야 할 정도로 문제도 많아 압박감이 컸죠. 2025년 현재는 온라인 교육과정이 생겼고 시험도 200문제를 3시간에 풀 수 있게 완화됐지만, 오랜 시간 현업에 종사한 이들 중에서도 불합격자가 나올 만큼 여전히 까다로워요.

2012년 CPDT-KA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커리어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일하면서 배운 내용을 실전에 적용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 수도권에 위치한 반려견 훈련소 10여 곳에 일일이 전화해서 부탁 아닌 부탁을 했죠. 직장을 다니다 보니 주말에라도 견사 청소나 허드렛일을 하면서 훈련사 일을 배우게 해달라는 제안이었어요. 돈을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번번이 거절당하다, 한 곳에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6주 정도 지났을 때 견사에서 개를 데리고 나오는 과정에서 훈련사가 개한테 마구 화내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저는 개 행동의 의미에 대해 잘 모를 때였지만 누가 봐도 그 개는 리드줄을 물고 잡아당기며(터그) 장난을 치는 모습이었어요. 외부인이 있는 데도 위탁 훈련을 맡긴 개를 저렇게 취급한다면 보는 사람이 없을 때는 더 심하게 다루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다른 방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지형씨는 훈련소를 그만뒀어요. 제대로 된 훈련을 배울 방법을 찾아보던 중 *캐런 프라이어 아카데미(KPA·Karen Pryor Clicker Training)를 알게 돼, 국내 1호 KPA 인증 정다영 트레이너를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죠. 전 과정 6~9개월이 걸리는 KPA 인증시험은 1차 시험은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치를 수 있지만 2차 시험은 미국에 직접 가서 응시해야 했어요. 교육비도 상당히 고액인 데다 당시 첫 반려견 헤일리(2013년생·보르조이)를 데리고 온 지 얼마 안 돼 지형씨는 2~3년간 직장 생활과 시험 준비를 병행했죠.

1차 시험은 6개월간 온라인으로 이론 교육을 받은 후 100문제 중 90% 이상 맞춰야 통과할 수 있고, 특히 담당 인스트럭처에게 영상과제 15개 이상, 리포트 과제를 제출해야 했어요. 당시 그의 담당 인스트럭처는 바로 세계적인 동물행동 전문가 *테리 라이언(Terry Ryan)이었죠. 1차 시험을 통과한 후 2015년 말에 퇴사한 지형씨는 2016년 1월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기반을 둔 KPA에 입학했습니다.

9일간 워크숍 형태로 진행하는 2차 시험은 2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해요. 하나는 지원자가 인스트럭처가 돼서 모의 클래스 형태로 보호자 교육을 8분 내에 진행하는 거죠. 보호자에게 교육을 실시한 후 개가 짖거나 돌발 행동을 했을 때 대처 능력과 개의 감정 상태를 보고 수업을 잘 따라가는지 등을 평가해요. 또 하나는 처음 보는 개를 랜덤으로 배정받아 5일간 트레이닝을 거친 후 결과를 만들고 과정을 증명하는 겁니다. 둘 다 통과해야 KPA인증 트레이닝 파트너 자격증을 받을 수 있죠. 지형씨는 2016년 2월 국내 4호이자 당시 최연소 인증 트레이닝 파트너(CTP)가 됐습니다.

KPA인증 트레이너가 됐지만 막상 국내에서 취업할 곳은 없었어요. KPA의 트레이닝 방법은 일종의 *긍정강화 프로그램으로, *IGP라는 독스포츠 장르의 훈련을 위주로 하는 우리나라 동물 훈련소나 대학 애견훈련학과에서는 KPA식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곳이 거의 없었죠. IGP는 해외에서는 주로 *사역견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결국 2016년 9월 개인사업자를 내고 제이클리커아카데미라는 회사를 운영한 지 이제 10년을 바라보고 있죠.

퍼피(강아지) 사회화, 행동문제수정 트레이닝, 자문과 강의, 반려견 관련 산업 컨설팅 등을 본업으로, 최근에는 지자체 반려견 순찰대, 전문가 양성과정, 도그워커 교육, 시민학교 교육 등 다양한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또 2024년 처음 실시한 맹견기질평가 이후 맹견 훈련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 자문단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저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입니다. 만약 자녀가 있으면 그 직업을 권할 것인가가 직업 만족도의 척도라면 바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요. 저는 동물과 일하면서 성장했고 계속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생각하는 동물 트레이너로서 객관적 위치는 아직 성장하면서 빌드업해 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장애 보조견 훈련 과정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형씨에게 반려견은 ‘내 선택으로 내가 데리고 온 가족’이에요. 개는 개일 뿐이며 개를 과도하게 의인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죠. 보호자는 그저 연민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요.

그는 올해 트레이너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10년이 지났지만 동물 트레이너라는 직업이 여전히 3D직종이라는 점, 긍정강화 방식으로 교육받은 학생들이 취업할 기관이 별로 없다는 점, 프리랜서 동물 트레이너들이 지자체나 여러 이벤트회사로부터 일을 제안받지만 올바른 정보나 보호막이 없어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서죠. 2026년에는 이들의 권익을 높이는 일에도 앞장설 계획입니다.

테리 라이언처럼 70세를 넘어서도 현업에서 활동하는 트레이너가 되는 게 목표인 지형씨는 동물 트레이너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죠. “동물을 의인화하지 말고 깊은 연민(empathy)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세계적인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 박사의 지론인데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그녀는 세상을 ‘그림’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독특한 인지 방식이 동물들의 감각적 경험과 유사하다며, 이를 통해 동물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동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트레이너에게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호주 르꼬르동블루: 미국의 CIA, 일본의 츠지요리학교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힌다. 르꼬르동블루는 프랑스 파리에 본교를 두고 있으며, 영국·호주·뉴질랜드·한국·태국·일본 등 세계 각국에 캠퍼스를 운영한다.

*CPDT-KA: Certified Professional Dog Trainer - Knowledge Assessed의 약자로, 반려견 훈련 전문가임을 증명하는 국제적인 자격증이다. CCPDT(Certifying Council of Professional Dog Trainers) 주관 시험을 통해 동물 행동학, 학습 이론, 훈련 기술 등 광범위한 지식과 기술을 평가받고 훈련사로서의 전문성과 지식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다.

*캐런 프라이어 아카데미(KPA·Karen Pryor Clicker Training): 국내에서는 긍정강화 교육으로 알려진 클리커 트레이닝의 창시자인 캐런 프라이어가 200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체계적인 반려견 클리커 트레이닝 전문가 과정 프로그램을 통해 긴 시간의 교육과 까다로운 자격시험을 통해 인증 파트너 트레이너를 양성하고 있다.

*긍정강화(Positive Reinforcement): 바람직한 행동 후 좋아하는 자극(보상)을 제공해 그 행동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며 '양적강화'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양적강화는 긍정강화의 결과로 행동의 '양'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IGP: 독일어로 Internationale Gebrauchshunde Prüfungsordnung의 약자로, ‘국제 실용견 시험 규정’이라는 뜻이다. 크게 추적(Tracking), 복종(Obedience), 방위(Protection) 세 과목으로 구성되며, 개의 능력뿐 아니라 핸들러와의 팀워크도 평가한다.

*사역견: 반려동물이 아닌, 여타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개로 다양하게 정의된다. 의미 있는 일을 위해 훈련을 받고 고용된 개로 설명되기도 한다. 목양견·경찰견·군견·썰매개·맹인안내견 등 다양하며 작업견이라고도 불린다.

*테리 라이언(Terry Ryan): 1968년부터 반려견 훈련과 강의를 시작한 동물행동 전문가로 ‘보상(보상 강화, reward-based) 방식’ 즉 긍정강화 중심의 개 훈련법을 강조한다. 미국 워싱턴주(및 그 외 지역)에 본부를 둔 교육기관 Legacy Canine Behavior & Training, Inc.을 설립·운영하며 정기적으로 국내외에서 세미나·워크숍·강의를 진행해 왔다. 2008년부터 KPA의 강사진으로 참여 중이다. 단순 반려견의 훈련을 넘어, 세계적으로 “과학적이고 비폭력적인 동물 훈련 방식”을 보급하고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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