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임금근로 일자리 소득에 따르면, 어떤 두 청년이 각각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입사해 60세까지 일할 경우 30대 10년간 누적 임금 격차는 3억원, 40대를 거쳐 50대까지 30년 동안의 총누적 임금 격차는 13억원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인 12억원보다 더 큰 격차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2000년 65.0%에서 2023년 53.6%로 낮아졌다. 이처럼 과도한 임금 격차가 주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냥 쉬는 청년이 50만명을 돌파했다. 중소기업에 입사해 대기업으로 전직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아니던가.
한국 노동시장은 ‘높은 임금, 고용 안정에 기업 복지가 풍부하고 노조와 정치의 보호도 받는 대기업·공공부문 등의 1차 노동’과 ‘낮은 임금, 고용 불안정에 기업 복지는 취약하고 노조와 정치에서도 소외된 비정규·중소·하청·플랫폼·프리랜서 등의 2차 노동’으로 분절됐다. 이 현상을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한민국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1차 노동시장 진입을 위해 극심한 교육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고, 적지 않은 청년은 2차 노동시장을 기피한 채 그냥 쉬고 있다. 이는 결혼율과 출생률 저하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아이들의 학용품과 장난감, 어른들 계모임과 동창회 등 일상에서 비교되는 1차 노동과의 생활 격차는 2차 노동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의 자존심도 꺾어 버린다.
유형근의 책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에 실린 한 여성의 가슴앓이를 소개한다. “계모임을 하면 2명은 비정규직이고, 2명은 자동차고, 2명은 석유화학단지고 이렇게 있어요. 연말 되거나 이러면 한참 연말정산이 뜨거울 때 ‘니 연봉이 얼마냐’부터 이러면, 그 친구랑 나랑 가만히 있죠. 연봉이 얼마 안 되니까. 다들 억, 억 이러는데 우리는 뭐. 다 같은 동기들의 계모임이에요. 근데 나눠져 있으니까.”
개미자리라는 생명이 있다. 개미가 잘 다니는 곳에 자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길가 빈터와 보도블록 틈새 등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키는 2~20㎝, 작고 연약해서 잡초 취급을 받으며 개미처럼 쉽게 짓밟히고 뭉개진다. 2차 노동시장이 개미자리 처지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전통적 노사 갈등을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 갈등, 원청과 하청기업의 사·사 갈등, 최저임금과 영세 상인의 노·상 갈등, 청년과 중년 노동의 세대 갈등 등이 다층적으로 얽히고설켜 이해가 충돌하는 영역이다. 문제를 풀려면 진보와 보수가 함께 나서야 하고, 노총과 경총 중심의 기존 노사정뿐 아니라 각계각층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중구조 개선의 사회적 과업에 벽돌 한 장 보태려고 지난 1월22일 한국노동재단을 창립했다. 2차 노동 당사자와 노동계, 시민사회, 경영계 등이 의기투합했다. 한국노동재단은 진영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질문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연대와 협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이다. 노사정이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나누도록 호소할 것이다. 이해 갈등의 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추진의 필요성을 제기할 것이다.
개미자리가 자연을 풍성하게 하는 존재이듯 2차 노동은 국내총생산(GDP), 내수, 취업률, 대기업의 생산, 사회 안정과 국가 경쟁력에 기여하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이다. 2차 노동시장에도 삶이 있고 꿈이 있고 자부심이 있다. 개미자리가 당당하게 가슴 펴고 일하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