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지 말아요, 짓이기지 말아요

2024-10-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용한 날들 2

- 한강

비가 들이치기 전에

베란다 창을 닫으러 갔다

(건드리지 말아요)

움직이려고 몸을 껍데기에서 꺼내며 달팽이가 말했다

반투명하고 끈끈한

얼룩을 남기며 조금 나아갔다

조금 나아가려고 물컹한 몸을 껍데기에서

조금 나아가려고 꺼내 예리한

알루미늄 세시 사이를

찌르지 말아요

짓이기지 말아요

1초 안에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하지만 상관없어, 내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갔다

24절기 가운데 동지, 이날 우리 겨레의 가장 흔한 풍속으로는 팥죽을 쑤어 먹는 일이다. 팥죽에는 찹쌀로 새알 모양의 단자(團子) 곧 ‘새알심’을 만들어 죽에 넣어서 끓여 만드는데, 식구의 나이 수대로 넣어 끓이는 풍습도 있다. 원래 팥죽은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 형초(荊楚, 지금의 후베이ㆍ후난 지방)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온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염병귀신을 쫓으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겨레는 단순히 귀신만 쫓으려 팥죽을 쑨 것이 아니다. 특히 지방에 따라서는 동지에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벼락이나 마당은 물론 마을 들머리 큰 고목에도 ‘고수레’하면서 뿌렸는데 이는 잡귀들의 침입을 막는다고 생각했을 뿐만이 아니라 겨울철 먹이가 부족한 짐승들을 생각하는 우리 겨레의 따뜻한 마음도 담겨 있음이다. 이는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두는 마음과 같은 것으로 이를 김남조 시인은 “조선의 마음”이라고 노래했다.

여기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그의 시 <조용한 날들 2>에서 베란다 창을 닫으러 갔다가 달팽이를 본다. 한강 작가는 “찌르지 말아요 / 짓이기지 말아요 / 1초 안에 으스러뜨리지 말아요”라고 하는 달팽이 말을 듣는다. 아니 작가가 달팽이와도 소통하려는 마음의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한강 작가는 "전쟁이 치열해서 사람들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라고 했다. 또 그는 5월 광주를 정면으로 다룬 《소년이 온다》를 쓸 때의 뒷얘기를 "소설을 쓰는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세 줄 쓰고 한 시간을 울기도 했다"라고 털어놨다.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한강 작가의 여린 마음이 빚어낸 말들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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