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살인’ 1년… 사건 되풀이
심신미약범 등 수용하는 법무병원
10명 중 6명 조현병… 조울증 10%
60%가 살인 등 강력범죄 저질러
환자 관리·치료 대부분 가족 책임
‘사전 징조’ 있어도 조치에 어려움
“강제 입원 권한 국가가 행사해야”
지난해 망상에 빠진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이웃 주민을 살해한 ‘일본도 살인사건’이 벌어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정신질환자의 이상동기 흉악범죄는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 4월 ‘미아동 마트 흉기난동 사건’을 비롯해 2023년 신림동·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모두 가해자에게서 전조 증상이 발견됐단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전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끔찍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의료계에서는 “사전 징조에도 가해자가 전문가를 만나지 못한 이유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와 치료는 여전히 가족에게 떠맡겨진 형국이다.

세계일보가 29일 국립법무병원 수용자 현황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12월31일 기준 전체 수용자 중 살인·성폭력·방화·강도 사건으로 구인된 비율이 57.1%(455명)에 달했다. 치사까지 포함하면 59.6%(475명)로 수용자 10명 중 6명이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의 흉악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국립법무병원은 심신장애 상태나 마약류·알코올 등 약물중독 상태, 정신성적(精神性的) 장애 상태 등에서 범죄를 저질러 법원으로부터 치료 명령을 받은 이들을 보호 구인하고 있다. 이들은 치료감호법에 따라 6개월마다 이뤄지는 치료감호심의위원회의 치료 종료 결정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수용자 현황을 죄명과 병명으로 나눠 살펴보면 ‘살인’(35.3%·281명)을 저지르거나 ‘조현병’(59.8%·477명)이 있는 경우가 각각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죄명별로는 ‘폭력’(19.6%·156명) ‘성폭력’(13.6%·108명) ‘방화’(5.6%·45명)가, 병명별로는 ‘조울증’(9.9%·79명) ‘지적발달장애’(6.4%·51명) ‘망상장애’(6.1%·49명) 순으로 집계됐다.

전체 범죄에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 자체는 낮다. 2023년 총 범죄 피의자(125만885명) 중 정신적 장애 피의자(1만3915명)가 차지하는 비율은 1.1%였다. 그러나 경찰청이 지난해 공개한 ‘2023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정신적 장애 피의자 중 강력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6.2%로 정신적 장애가 없는 이들의 강력범죄 비율(1.9%)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정신질환이 바로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조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돌연 강력범죄가 일어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정신장애 관련 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 등과 함께 이달 1일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토론회를 열었다. 본인이 아프다는 ‘병식’이 없는 정신질환의 치료가 환자 가족에게만 떠맡겨진 상황에서 자·타해 사건이 벌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정신장애 국가책임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홍보위원장은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와 비자의 입원 권한을 국가가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은 부양의무자인 가족에게 사실상 강제입원의 권한을 부여했다. 이는 가족에게 주는 선물이라기보다는 가족에게 국가가 부담할 책임을 넌지시 넘겨 놓은 것”이라며 “(보호의무자 제도를 두고 있으니 문제들이 계속 발생해도) 국가의 본연의 역할로서 해야 할 치안의 책임이 자기들 것이 아닌 가족들의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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