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읍내에 가면 아주 작은 카페 하나가 있다. 이름도 좀 특이한 ‘임실 디디에 카페’가 바로 그것이다. 디디에∼ 디디에∼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한 단어다. 맞다.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라는 파란 눈의 서양인, 그가 바로 지정환 신부 아니던가.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던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신부인 그는 임실 치즈의 아버지다. 지정환 신부가 1964년부터 마을 주민들과 함께했던 곳이 '임실 디디에 카페'로 변신했다.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세례명은 디디에, 임실 지씨(任實 池氏)의 시조가 바로 지정환 신부다. 1961년 부안군 부안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후에 3년 동안 간척지 100 헥타르를 조성해 농민에게 제공하는 등 가난한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줬고 이후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한동안 잊혀진 듯했던 지정환 신부가 지난달 18일 벨기에 브루노 얀스 주한대사가 임실군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대사 일행은 심민 임실군수 등과 면담하고 임실치즈테마파크, 임실치즈역사관 등을 둘러보며 지정환 신부의 업적을 회고했다. 지난해 10월 임실N치즈축제 때에는 임실군이 '벨기에의 날'을 지정·운영했고, 11월 벨기에 '국왕의 날'엔 임실군이 초청받기도 했다. 작은 농촌지역 군에 불과한 임실군이 오늘날 벨기에와 두터운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것은 단 한사람, 지정환 신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랜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난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작고 가난했던 임실에 왔을때 사람들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벨기에는 부자인데, 한국은 왜 가난한가”라고 말이다. 그러자 지정환 신부는 답했다. “벨기에는 할아버지들이 희생을 많이 해서 잘살고, 한국은 조상들이 기술을 배우지 못해 못산다. 여러분이 희생해서 자손들은 잘살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라고 말이다. 지금 죽을 고생을 해야만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는 거다. 사람들이 가난함에도 일하지 않는 것을 보며 이대로 있으면 계속 가난이 대물림될 것이 뻔한 상황이기에 지금 행동하고 희생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무려 60년이 지났지만 현 상황에서도 울림이 있는 말이다. 지정환 신부는 주로 임실에서 활동했지만 그가 전한 메시지는 비단 임실에 국한하지 않는다. 지역소멸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전북은 지금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가난의 대물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비해 계속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면 그것은 곧 가난이 더 심각하게 대물림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은 발상과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다. 모든 의사결정과 집행과정이 과거와 같은 관성에 의해 이뤄지는 시스템이라면 앞날이 더 어두워질것은 불을보듯 뻔하다. 60년을 한국인으로 살았던 파란눈의 이방인 지정환 신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며 일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면 지금 당장 죽을 각오로 희생하고 뛰어라”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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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환 신부와 가난의 대물림
위병기 bkweeg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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