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E 게임, 왜 성공 사례를 남기지 못했을까?
[디지털포스트(PC사랑)=이백현 기자]
최근 떠들썩한 소식이 많은 가운데, 기자의 눈을 유독 잡아끈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P2E(Play To Earn) 게임 대표주자로 알려진 위메이드의 코인 '위믹스'가 재차 상장 폐지라는 결과를 맞이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플레이 투 언, 그러니까 게임을 해서 가상화폐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실제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도록 해서 게이머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구상은 2021년 초 게임업계의 화두가 된 바 있습니다. 챗GPT 등장으로 인한 'AI 붐'이 일기 전이었죠. 당시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가 연이어 고공행진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게임업계와 가상화폐 기술을 결합해 챗GPT처럼 '눈에 띄는 성공'을 보여준 기업은 아직 없습니다. 'P2E', '블록체인'과 같은 키워드는 더 이상 투자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 보이죠.
그렇다면 P2E 게임은 왜 '성공 사례'를 남기지 못했을까요?

P2E 게임의 전신은 2017년 이더리움 기반의 '크립토키티(CryptoKitties)'였습니다. 이 게임은 고양이 캐릭터를 NFT(대체불가능토큰)로 만들어 교배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한때 이더리움 네트워크를 마비시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비록 명확한 '수익 모델'은 없었지만, 게임 아이템의 소유권과 환금성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현실화했습니다.
P2E의 진정한 붐은 2021년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의 성공에서 비롯됐습니다. 사용자는 귀여운 괴물 ‘엑시’를 키우고 전투에 참여하며 가상화폐를 얻고, 이를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화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특히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수많은 이들이 엑시를 생계 수단으로 삼으며 “게임은 곧 노동”이라는 풍경이 펼쳐졌죠. 블록체인과 NFT가 결합된 수익형 게임의 대표 주자로 엑시는 하루 수백만 명의 이용자를 끌어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 엑시 해킹 사건(6억 달러 규모)과 토큰 경제의 인플레이션, 신규 유입 감소 등으로 수익 모델이 붕괴되며 한계를 드러냈죠.
이 '엑시 인피니티'는 P2E 게임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인 동시에, 몰락하는 P2E 게임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P2E를 내세웠다 몰락하는 게임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엑시 인피니티'와 일관된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새로운 P2E 게임의 서비스가 시작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게임에 흥미를 보인 게이머들과, '돈을 벌러 온' 사용자들이 대거 게임에 유입됩니다. 처음엔 다들 게임 세계를 탐험하는 데 바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돈을 벌러 온' 사용자들은 게임 내 코인을 취득하고, 그 코인을 현금화하기 시작하겠죠.
시장에는 점차 더 많은 양의 코인이 공급될 겁니다. 여기에다 "게임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더 많은 '코인 생산자'들이 게임으로 유입되겠죠. 힘들여 직장에 나가지 않고도 게임 내 노동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이용자는 상당히 많을 겁니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코인이 계속 공급된다면, 코인의 가치는 하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코인이 어딘가에서 '소비'되지 않으면, 코인의 가치는 유지되기 어렵겠죠.
이때 코인을 '소비'할 수 있는 세력은 게임 자체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고, 현금을 써서라도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는 이용자들입니다. 이런 게이머들은 현금으로 판매되는 '코인'을 취득한 후, 이 코인을 게임 내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등 재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만약 게임이 충분히 흥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써서라도 '코인'으로 게임 내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어한다면, 코인의 공급량과 가격은 적당량이 유지될 겁니다. 코인을 구매하는 '게이머'도, 코인을 판매하는 사용자들도 서로 만족할 만한 상황일 수 있겠죠.(투자 목적으로 '코인'을 구매하는 투자자들도 있겠지만, 투자자들은 '코인'을 소비하지 않으니 코인의 공급량과 가격을 적절히 유지하는 데는 기여하지 않습니다.)
다만 게이머들은 언제든지 게임에 흥미가 사라지면, 지속적인 코인 구매를 그만두고 게임을 떠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코인 판매자'들은 어떨까요? 게이머가 떠나 코인 소비가 줄어들면, 가상화폐 시장에 공급되는 코인의 개수가 많아집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떨어지겠죠.
다만 '엑시 인피니티' 등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게임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용자들은 쉽사리 게임에서 떠날 수 없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건 게임을 그만두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현금화되어 유통되는 코인의 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코인의 가격은 더욱 줄어듭니다.
이런 과정에서 코인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코인을 구매해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라면 아이템의 현금 가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많은 사례로 반박당한 바 있습니다. 흔히 게임에 수천 만 원을 쓴다고 알려진 속칭 '고래' 유저들은, 자신이 소유한 아이템의 가치가 떨어지면 강렬한 반발 의사를 표출하거나, 게임을 떠나기까지 합니다. 최근 스마일게임즈의 '로스트아크'에선 기존 아이템 가치를 급속도로 떨어뜨리는 패치로 유저들의 역풍을 받은 바 있죠.
P2E 게임에서 '코인'의 현금 가치가 감소한다는 것은 곧 게임 내에서 보유한 아이템과 자산의 가치가 감소한다는 뜻입니다. 높은 등급의 장비를 구매하고, 이를 통해 더 높은 난이도의 과제에 도전해 '쟁취해낸' 아이템과 재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이 게이머들이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 자체가 감소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게이머'가 이탈하고 나면, 소비되지 않는 코인은 시장에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그리고 종래에는 더 이상 코인을 판매해 돈을 벌 수 없다면? P2E 게임의 존재의의 자체가 무력화되는 셈입니다.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들이 이탈하면, 게임으로 돈을 벌던 사용자들도 결국에는 게임을 이탈할 수밖에 없습니다.
P2E가 아닌 게임은 일시적인 유저 이탈에도 존속할 수 있고, 추후에 다시 유저를 끌어모으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P2E로 출발했는데 더 이상 돈이 안 되는 게임'은 어떨까요? 게임의 대내외적인 경쟁력을 잃게 될 테고, 투자 목적으로 코인을 구매했던 이용자들도 손을 떼겠죠.
P2E가 아닌 게임도 게임 내 재화의 가치를 적정하게 유지하고 운영해나가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한때 '갓겜'으로 칭송받던 로스트아크도 논란이 되는 패치 한두 번으로 유저 이탈을 겪곤 하니까요.
정리하자면, P2E 구조의 게임은 '코인을 소비하지 않는 생산자'로 인한 태생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게임을 그만두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만약 일시적인 유저 이탈이 일어나도 '코인 생산자'는 늦게 반응하기 마련이고, 소비자들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가도 '코인 생산자'들은 시장에 계속 코인을 공급합니다. 이들의 지속적인 현금화는 코인의 가치를 더 떨어뜨리고, 이는 '코인 생산자' 뿐만 아니라 주요 게이머들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앞서 대표적인 P2E 게임으로 꼽았던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의 경우에도, 직접적인 몰락의 원인은 6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었던 2022년 '엑시 해킹 사건'이 꼽힙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유저 이탈'에 취약한 P2E 게임의 특성이 그 기저에서 작용했죠.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서, 최근 가상화폐 '위믹스' 해킹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P2E 게임사, 위메이드는 어떨까요? 위메이드는 지난 2월 28일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고로 약 90억원에 달하는 위믹스 코인을 탈취당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위믹스의 상장 폐지를 결정했고, 위믹스는 DAXA를 상대로 가처분 소송을 예고했죠.
이 과정에서 위믹스는 급락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9일 기준 위믹스는 525원으로, 상장폐지 공지 전인 2일 종가 기존 1,075원과 비교해서는 50.8% 급락했고, 위믹스 역대 최고가 2만 3,000원 대비로는 97.7% 하락했습니다. 지금까지 P2E 게임의 흐름으로 봤을 때, 위메이드 역시 '일시적인 유저 이탈'에 취약한 P2E의 특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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