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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아픔의 출처를 느낄 새도 없이 밀려드는 근육통과 오한의 고통이 나의 머리에 대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라며 끊임없이 소리치는 듯했다. 그렇게 뇌의 신호를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고 병원 의자에 앉고 나서 깨달았다. 아, 유행이다. 대기 번호가 두 자리를 넘어간 전광판, 앉을 자리도 없이 서 있는 수십 명의 대기자가 이 유행의 물결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런 유행은 좀 뒤처져도 되건만, 나 역시 독감과 코로나의 유행에 동참하고 있었다. 두 시간의 대기 끝에 B형 독감이라는 진단과 함께 담당 의사는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5일 정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을 ‘권고’했다.
수액으로 잠시 호전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집에서 격리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직장에 연락해 독감에 걸려 쉬어야겠다는 말을 전하려는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쉰다고 말할까?’
지난달,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회사나 부서에 유급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 ‘그렇다’라는 응답이 50.1%, ‘아니다’는 26.3%, ‘유급 연차휴가가 없다.’는 26.3%로 나타났다고 한다. 유급 연차휴가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자 42.2%가 ‘회사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 답했다. 그렇다. 직장인 중 절반만이 유급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다는 결과다. 자유로운 유급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있는 인원 중 특성별로 구분했을 때 사무직은 65.0%, 생산직 39.6%, 서비스직은 29.3% 정도만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며, 리서치 결과 중 ‘그렇다’라고 대답한 직무 중 가장 낮은 퍼센트를 기록한 ‘서비스직’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업계 특성상 서비스 업무는 퇴근 시간까지 ‘멈춤’이라는 것이 없다. 직원이 출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객이 알 수도, 일정을 조정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의 대다수 업무는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그걸 해주고 있는 것이고, 누군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이다. 바꿔 말하면 한 업무의 담당이 있다기보단,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로 구성돼 있다. 그만큼 한 명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결국, 갑작스러운 연차에 눈에 밟히는 것이 남아있는 이들이다. 여기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얼마나 쉰다고 말해도 될까?’
내 결론은 3일간 쉬는 것이었다. 고용주를 비롯한 누구도 연차 사용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연초부터 연차를 많이 소진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그만큼 남은 이들에게 계속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불편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연차가 소멸하는 마지막 달, 여러 개의 연차가 남았고, 이를 소진하기 위해 연차를 붙여 사용하게 되었다.
직장 대부분이 그렇듯 연차를 소진하지 않으면 회사에서는 일차적으로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라는 것을 행사한다. 이는, 연차가 소멸하기 6개월 전 일차적으로 근로자에게 남은 휴가 일수를 알리며, 이후 근로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않아 소멸한 경우 미사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 보상 의무를 면제하는 제도다.
이쯤 되면 삐딱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연차를 쓰면 마음이 불편하고, 연차를 쓰지 않으면 소멸해 버린다니.
연차 사용의 자유도는 업무 강도와 함께 직장의 규모 차이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위의 리서치에서 연차휴가가 의무가 아닌 5인 미만 회사에서는 유급 연차휴가가 없다고 대답한 비율이 54.0%나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내 일을 나눠서 해줄 이가 많다면 고용주로서도 부담이 덜할 테고, 직원들 역시 적당한 십시일반으로 일을 나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한 후 연차를 소진(消盡)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차는 소멸(消滅)시켜야 할 존재처럼 느껴진다. 내가 원하는 때,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없다면 그저 아무 일도 없는 날 무의미하게 없애야 할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생활의 정서상 연차를 소진의 대상으로 볼지 소멸의 존재로 볼지는 당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런데도 연차휴가는 노동자가 만들어 낸 노동의 권리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올해 당신의 연차가 휴식의 의미로 소진되길 바라며, 필자 역시 이번 연차를 알차게 잘 사용해보려 노력할 ‘계획’이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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