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 차선에 수시로 차들이 방향지시등을 켜며 끼어든다. 출구로 나가려도 해도 빠져나가려는 차량이 몰려 긴 줄이 만들어져 고속도로인지 주차장인지 헷갈릴 정도다. 줄을 서는 대신 출구 가까이서 갑자기 끼어드는 얌체족까지 만나게 되면 스트레는 극에 달한다. 인천 부평구에 사는 정혜리씨는 서울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를 타는 게 고역이다. 정씨는 “3·4차로에 화물차 통행도 잦고, 곳곳에 진출로도 많아 통행에 더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지·정체를 줄이기 위한 개선책을 고심 중이다. 그중 하나가 ‘급행 차로(Express Lane)’ 도입이다. 4일 한국도로공사(도공)에 따르면, 도공은 수도권제1순환선 일산방향 장수나들목(IC)→중동IC 구간에 ‘고속도로 장거리 전용 차로’ 시범 도입을 추진한다. 지난 7월 열린 국토교통부 ‘제6차 모빌리티 혁신 위원회’에서 한국도로공사가 신청한 도로교통법상 특례가 통과되면서다. 현행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고속도로에서 차로는 자동차의 종류와 앞지르기 목적 여부에 따라 구분돼 있다. 도공은 1~2차로를 차종과 관계없이 장거리 목적의 차량을 위한 전용 차로로 운영하기 위한 특례를 받았다.
2023년 국토부의 도로이용자 만족도 조사에서 고속도로 이용자의 80% 이상이 차량 정체를 경험해 잦은 불편을 토로했다. 정부 재정으로 건설된 고속도로 중 최저통행속도(50㎞/h)에 못 미치는 속도로 하루 1시간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하는 상습 정체 구간은 총 76개 구간(429.9㎞)에 달한다. 특히 IC 간격이 짧은 구간에서 진ㆍ출입 시 차로 변경으로 도로 전반적으로 차량 속도가 줄어드는 일이 빈번했다.
장거리 전용 차로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예를들어 1~4차로 도로 중 1ㆍ2차로는 급행 차로로, 3ㆍ4차로는 일반 차로로 나누는 게 핵심이다. 2차로와 3차로 사이에는 차로 변경을 할 수 없도록 분리 시설을 설치해 장·단거리 차량을 구분하자는 아이디어다.

시범 운영 후보지인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일산방향 장수IC→중동IC 구간은 딱 맞는 조건을 갖췄다는 게 도공의 판단이다. 지난해 교통량 조사자료에 따르면 중동~송내 구간은 양방향 일평균교통량 26만6708대로 전국 고속도로 평균(5만2480대) 대비 5.1배 높았다. IC 간 거리도 짧다.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평균 IC 간 간격은 3.7㎞이지만 장수IC→송내IC 구간은 2.41㎞, 송내→중동 구간은 2.02㎞에 불과하다. 도공은 “장거리 통행 비율(66%)이 단거리(34%)보다 높아 장거리 전용차로 도입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구간의 장거리 전용 차로 도입은 과거에도 검토된 적 있었다. 2010년 한국교통연구원에서 펴낸 ‘고속도로 급행 차로 설치 효과에 관한 연구’에서다. 당시 연구에 따르면, 급행 차로를 시행하지 않은 구간(일산 방향)에서는 차량 속도가 66.8㎞/h~93.2㎞/h에 그쳤고, 급행 차로에서는 100.1㎞/h가 나왔다. 연구를 주도한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급행 차로를 이용하면 장거리 통행은 뚜렷한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만, 단거리 통행은 운영 악화 현상이 나타났다”며 “급행 차로 운영 시 일반 차로 이용 차량이 하부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대체 경로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운전자들이 걱정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는 “2021년 서부간선지하차로가 개통했을 때 지하로 금천~성산대교까지 가는 차량은 빨라졌을지 몰라도, 목동 등으로 가는 길은 더 막혔다”고 우려했다. 도공은 “장거리 전용차로 도입으로 인한 하부 도로의 영향과 안전 문제를 검토하는 단계”라며 “향후 지자체 및 지역주민 대상 설명회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