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금융 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하다. 은행 중심의 시장구조, 혁신보다 규제를 우선시하는 정책 환경, 글로벌 네트워크와 해외 수익의 부진 등이 대표적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회사 내부를 보면 단기 성과에 치우친 경영, 장기 투자와 혁신 기업 지원 능력의 부족은 이미 지적돼온 약점이다.
금융 산업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본 확충이나 규제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되살려 생산적 금융과 포용 금융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경영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으로 떠오르는 것이 이해관계자 경영이다. 이는 고객·임직원·투자자·지역사회·환경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경영의 중심에 두는 관점이다. 장기적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신뢰를 확보하는 현대적 경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금융권에서도 이를 기반으로 한 국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은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최상위 등급인 ‘DJSI 월드’ 지수에서 수년째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서도 세계적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JB금융과 같은 지방금융지주사도 글로벌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으며 규모가 아닌 철학이 경쟁력을 만든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ESG 경영의 성과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해관계자 모두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고민하는 경영 철학의 강력한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ESG는 일시적 유행이나 홍보 도구로 머물 위험이 있다. 국제 경쟁력은 단기간에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쌓인 철학·문화·신뢰의 결과물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올해 창립 68주년을 맞은 교보생명의 경험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교보생명 창업자인 고(故) 신용호 회장과 2세 경영인 신창재 회장은 ‘보험 업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협회(IIS)의 보험명예전당 월계관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창업자와 후계 경영자 모두 세계 보험 산업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기회주의적 경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문화를 살리는’ 이해관계자 중심의 기업가정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교보생명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기 세계 최초의 교육보험을 개발하며 인재양성에 기여했다. 또 교보문고·대산문화재단을 통해 한국의 문학·출판·교육 생태계를 육성하는 독보적 모델을 구축해왔다.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국민 교육, 문화 발전, 사회적 약자 지원 등 주변 이해관계자까지 아우르는 경영은 세계 보험 산업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고객·임직원이라는 핵심 이해관계자와 지역사회·환경 등 주변 이해관계자를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재무 성과와 사회적 영향의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을 함께 달성하려는 경영 철학은 오늘날 ESG 경영이 지향하는 최고 수준의 프레임 워크다. 이러한 모델은 ‘한국형 이해관계자 경영’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증 사례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결국 급변하는 경제·사회 환경 속에서 금융 산업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이해관계자 경영의 철학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한국 금융 산업의 미래는 규모가 아니라 신뢰와 철학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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