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저출산 해소를 위해 지난해부터 도입한 ‘육아휴직 공시제’가 시행 첫해부터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회예산정책처가 코스피 상장사 848곳을 분석한 결과 사업보고서에 육아휴직 정보를 미공시(221곳, 26.1%)하거나 정보를 미기재해 파악 불가한 경우(77곳, 9.1%)가 3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0%로 공시된 기업도 13.9%에 달했다.
육아휴직 공시제는 지난해 금융감독원 공시를 통해 도입한 제도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저출생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 2023년부터 근로자 1000명 이상 기업은 육아휴직 사용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부터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 지침으로 도입돼 공시를 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가정양립 정책의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를 두고 금융감독원에 업무를 맡기면서 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관계 부처들의 책임 회피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제도 설계에 참여한 기관들에게 관련 통계를 요구했지만 모두 ‘우리 일이 아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먼저 고용노동부는 “상장기업 육아휴직 사용 현황 공시제도는 금융위원회 소관”이라고 회답을 보내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해당 제도를 관할하는 고용노동부나 금융감독원에서 관리할 사항”이라는 응답을, 금융감독원은 “육아휴직 제도 사용 공시 관련 데이터가 없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전수 조사가 코스피 기업에만 한정되어 1781개에 달하는 코스닥 상장사의 육아휴직 실태 파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코스피 기업보다 기업 규모가 작은 경우가 많아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도입 및 사용 현황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김 의원은 “저출산 해소라는 국가적 과제를 위해 육아휴직 공시제가 도입됐지만, 법적 근거와 부처 간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벌써부터 제도가 사문화되어 가는 상황”이라면서 “상장 여부가 아닌 상시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육아휴직 사용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