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커피숍도, 중식당도…필리핀보다 못한 간첩법"

2025-03-05

5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간첩법 개정안 대토론회' 열려

"개정 방향, 간첩을 간첩법으로 처벌하자는 단순 논리"

"기술 유출 심각…회사 통째로 산 뒤 기술 빼내고 버려"

"세계 어느나라도 정보기관 권한 보장…우리만 후퇴"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서울 시내 호텔 커피숍에 가면 조심하십시오. 간첩들이 많이 있습니다. 발언은 다 녹취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울 송파구의 중식당에서 이야기하는 건 테이블 밑에서 100% 녹취됩니다. 그런데 이들을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남성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5일 국회의원회관 소통관에서 열린 '간첩법 개정안 대토론회' 발표자로 나서 말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 출신으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이날 '외국간첩 처벌 규정 부재에 따른 국방·경제안보 실태와 개정입법 필요성'을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남 교수는 "간첩법을 반대하는 자가 간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8개국 중에 간첩법을 이렇게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물론 영국(국가안보법), 일본(특별비밀보호법), 중국(반간첩법), 독일(국가기밀보호법) 등 선진국들은 예외 없이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며, 외국을 이롭게하는 간첩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형법 제98조에 따라 적국을 위해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적국(敵國)'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조항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하지만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간첩법 적용이 제한적이고, 따라서 대법원 판례(82도3036)를 근거로 '북한 간첩'만 처벌해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 조문의 '적국'을 '외국'으로 바꾼 '간첩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남 교수는 "간첩법 개정 방향은 '간첩을 간첩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자'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라고 부연했다.

남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간첩에 대한 인식이 필리핀보다도 뒤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필리핀과 중국이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해 싸움을 하면서 중국 간첩들이 필리핀까지 들어왔다"며 "필리핀은 지난 1월에 간첩 5명을 검거했고, 법을 개정해 (중국 간첩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 발표자인 손승우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은 '산업기술 유출에 대한 대응 역량 강화와 정치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산업스파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을 역임한 손 상임고문은 "산업기술의 해외유출 건수는 꾸준한 증가 추세이고, 분야별로 반도체 분야가 가장 많다"고 언급했다. 경찰청의 2018년~2023년 6월 산업기술 해외유출 현황에 따르면, 총 78건 중 중국으로 51건이 빠졌으며, 손실은 연간 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손 상임고문은 "기술 유출 경로를 보면 옛날에는 직접 사람을 컨텍해서 데려가는데, 이제는 퇴직자에게 약간의 연봉을 준 다음, 퇴직자가 다시 내부를 컨텍하게 하면서 단계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간 '인수합병'도 기술 유출의 한 방식으로 지목됐다. 손 상임고문은 "요즘에 늘어나고 있는 방법으로,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것"이라며 "기술을 빼내고 버리는 방식으로, 이런 형태가 지금 판교 지역에서 중국 업체들이 들어와 상당히 많이 하고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손 상임고문은 선진국들이 기술 유출 이전의 과정까지 간첩으로 처벌하는 규정들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기술뿐만 아니라 인프라에 대한 접근, 데이터 관련 부분까지도 확대해서 규제하고 있다"며 "영국은 포괄적인 산업스파이 행위들을 규율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손 상임고문은 "미국이나 영국, 대만, 중국처럼 스파이 행위에 대해 넓게 범죄 행위를 커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정원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10위 안에 드는 아주 강력한 정보기관이었다"면서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정보기관은 활개를 넘어서 기능과 권한을 보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후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윤 선임연구위원은 "민주당은 간첩법 개정으로 간첩 혐의자를 양성한다고 하는데, 간첩을 양성하지 못하도록 처벌하는게 국가 안보"라며 "국익을 보장하고 나라가 안정돼야 대한민국의 삶을 보장하는 그런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언제적 간첩이냐'거나 '군사 기밀이 다 국가 기밀이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거 다 기억하실 거"라면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간첩죄 개정에 조속히 협력하지 않으면, '간첩이 따로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꼬집었다.

righ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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