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기업이 절벽 위에 섰다. 벤처기업이 창업 3~5년 사이 이르게 된다는 데스밸리의 그 절벽을 우리나라 벤처산업 전체가 겪게 된 것이다. 지난 1999년 IMF 극복 직후 불 붙듯 생겨난 벤처가 24년만에 평균치 기준 처음으로 적자전환한 양상이다.
벤처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는 속설처럼 벤처와 위기가 동떨어진 개념은 아니다. 우리나라 벤처 또한 IMF와 이후 두차례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혹한기를 자양분 삼아 융성했다. 언제든 망할 수 있어 벤처라 했고, 아무도 가지 않은 전인미답의 비즈니스를 한다고해서 스스로 벤처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랬던 벤처가 산업구조 자체의 경화(硬化)가 가져온 영역 축소에, 주요 성장품목 중심 대기업의 계열화 가속 및 내재화에 따른 입지 위협에 내몰려 시름시름 앓게 됐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 재정 확장기조가 좁혀지면서 연 25%에 달하는 이자비용 증가세와 장부 매출 빼고는 모든 것이 올라버린 에너지, 물류, 인건비 등의 상승이란 융단폭격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추위는 가난한 자에게 더 혹독하듯, 벤처 실적도 매출 규모가 적을 수록 치명적으로 악화됐다. 연 매출규모가 5억원 미만인 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19.2%에 달했다. 이는 법인을 유지하며 숨만 쉬어도 적자가 매출액의 세배 이상이란 뜻이다. 연매출 400~500억원씩 내는 벤처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로 그나마 물가 상승률보다는 높은 수치를 내고 있는 것이 대조적이다.
벤처 특성상 가볍고 작은 창업 초기일 수록 위험도가 높은 점은 피할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넓고, 다양하고, 싱싱하게 퍼져있는 생태계와 이들이 싹을 감춘 상태계는 그 건강성에서 비교할수 없는 차이를 갖는다. 이들 벤처가 생장하면서 혁신과 도전의 상승기류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결국 전략·주력 산업의 자양분으로 흡수되는 구조가 이상적인 것이다.
때마침 한국벤처기업협회의 차기 회장까지 적임자를 찾지 못해 재공모를 해야할 상황이라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이 문제에 비상한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한다. 기업의 일이니 나몰라라 했다간,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 전체의 동력과 에너지를 식게 만들수 있다. K-벤처가 지금 앞에 닥친 데스밸리를 넘어 다시한번 고속성장의 엔진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부 역할을 실기(失期)해선 안 될 일이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