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2023년 11월에 우연히 본 외신 기사에 깜짝 놀랐습니다. ‘월레스와 그로밋 제작사, 클레이(찰흙) 부족 위기’.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 등 클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에 클레이를 공급하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스튜디오에 ‘딱 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클레이만 남게 됐다는 기사였습니다.
별걸 다 만들어내는 시대에 찰흙 공장이 문을 닫아서 <월레스와 그로밋>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되다니. 웃기고, 허탈하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요? 아드만 스튜디오는 곧 “팬들의 우려에 감동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현재와 미래 작품을 위한 재고를 많이 보유하고 있고, 작품을 계속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뒤에서 준비해 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1년여 뒤인 지난 3일. 넷플릭스에 아드만 스튜디오의 신작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가 공개됐습니다. 장편 영화로는 <월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2005) 이후 20년 만의 작품입니다.
월레스는 영국 맨체스터에 사는 발명가, 그로밋은 월레스의 반려견입니다. 둘은 푸른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던 범죄자 펭귄 패더스 맥그로를 경찰에 넘긴 뒤(<월레스와 그로밋: 전자바지 소동, 1993)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월레스는 아침에 기상한 순간부터 전적으로 자신이 발명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생활합니다. 토스트에 잼을 바르는 것은 물론, 토스트를 들고 먹는 것조차 기계에 의지하죠. 그로밋은 월레스가 좀 과하다고 느끼지만, 그냥 맞춰줍니다.
흙냄새를 맡으며 정원을 가꾸는 것은 그로밋이 하루에 가장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뿌듯해하고 있던 어느날, 월레스가 커다란 나무 박스를 들고 옵니다. 나무 박스에서 노래를 부르며 튀어나온 것은 월레스가 새로 발명한 인공지능(AI) 로봇, ‘노봇’ 입니다. ‘허드렛일하는 스마트 난쟁이 로봇’인 노봇은 엄청난 속도로 정원을 손질합니다. “난 밝고 빠릿빠릿한 로봇, 난 일하는 게 좋아, 깔끔하게 정돈!”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노봇은 순식간에 정원의 모든 나무를 똑같이 각진 모양으로 잘라놓습니다. 그로밋이 양말 한 짝을 뜨는 동안 점프 수트를 완성해냅니다.
얼마 뒤 그로밋은 그저 ‘짜증 나는 로봇’에 불과했던 노봇이 어딘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노봇의 눈동자가 이렇게 까맸던가요? 초점 없고 새카만 이 눈은···지금 감옥에 있는 어느 펭귄의 눈이랑 똑같은 거 같은데요? 영화는 감옥에 갇혀있던 악당 패더스가 탈출해 노봇을 ‘악마’ 모드로 바꿔 조정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영화는 과학기술 시대를 영리하게 풍자합니다. AI로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면 놀랄만한 영상 한 편이 뚝딱 나오는 시대에, 클레이로 만든 피규어를 한 땀 한 땀 움직여가며 만든 애니메이션에 이렇게 몰입하게 되는 걸 보면 “기계가 못 하는 것도 있지”라는 월레스의 말은 꼭 영화 속 상황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혼자 보기도, 가족과 함께 보기도 좋은 귀여운 영화입니다
이게 정말 아드만 스튜디오의 마지막 작품이냐고요? 아닙니다. 아드만 스튜디오는 현재 마텔사와 함께 새로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시리즈 <핑구>를 개발 중입니다. 2027년에는 ‘포켓몬 프로젝트’도 공개됩니다.
촉감 지수 ★★★★★ 보는 것만으로도 말랑말랑한 느낌
박수 지수 ★★★★★ 이 모든 장면을 손으로 만들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