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일 같지 않은 프랑스 재정위기

2025-10-09

우리가 추석 명절을 즐기던 지난 6일 프랑스에서는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가 전격 사임했다. 취임 27일 만이다. 최근 2년 새 사임한 다섯번째 총리다. 재정 개혁을 추진하다 좌초한 전임 내각의 잔해를 수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로써 감세와 재정 지출 삭감을 통해 경제 체질을 바꾸려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은 동력을 잃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집권한 뒤 법인세와 소득세·부동산세를 줄였다. 프랑스 회계감사원은 매년 500억 유로(82조원) 규모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지출은 줄이지 못했다. 코로나19 대응에 1700억 유로(280조원),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에 따른 에너지 보조금에 720억 유로(120조원)를 썼다. 지난해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8%, 국가부채는 113%에 달했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긴축 정책은 ‘총리 잡아먹는 수렁’이 됐다.

돈 쓰기 좋아하는 민주당 정부

세금은 ‘일부 있는 자들’에만 걷고

낸 빚은 미래 세대에 미루고 외면

프랑스의 위기를 우리나라에 대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GDP의 49%다. 복지지출은 GDP의 15.5%로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세금은 GDP의 22%로 OECD 평균(35.6%)보다 한참 낮다. 프랑스가 고부담-고복지 체제라면 우리는 저부담-저복지 체제다. 이재명 정부에서 “아직 여력이 있다”며 재정 확대를 추진하는 바탕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괜찮을까. 한번 늘어난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프랑스에서 보듯이 정말 어렵다. 그러니 두 가지 방도가 남는다. 돈을 더 벌거나 빚을 내거나.

정부가 돈을 버는 방법은 증세다. 인기가 없기는 재정 긴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부 고소득자, 자산가’에게만 부담이 는다고 설명한다. 이재명 정부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이나 주거 복지에 필요하다면 어떤 수단이건 써야 한다”(9월 20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장관이 아닌 개인 입장으로는 보유세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9월 29일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는 말이 나온다.

통념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재산세는 OECD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보유세는 GDP의 1.2%로 OECD 평균(1.1%)과 비슷하지만, 증여세·취득세 등 거래세를 포함한 전체 재산세는 4.5%에 달한다. 양도소득세까지 포함하면 6.3%로 OECD 평균(2.1%)의 세배다. 매년 1%를 보유세로 매긴다는 미국의 재산세는 GDP의 3% 수준이다.

소득세는 근로자 열 명 중 세명이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소득 상위 1%가 42%를 부담한다. 법인세 역시 5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65개 기업이 전체의 35.6%를 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선진국보다 외형적인 누진도만 높을 뿐 과세 기반이 넓지 않다”며 “세율 인상보다는 과세기반 확충을 통한 세수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서민 주택’이나 ‘저임금 근로자’에게 세금을 물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남은 방법은 빚으로 돌려막기다. 민주당 정부는 돈 쓰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부채는 600조원에서 1000조원으로 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봄에 뿌릴 씨앗이 없어 밭을 묵히려니 답답하다”며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나랏빚이 올해 125조원, 내년 115조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부채 비율은 10년 후 GDP의 71%, 20년 후 97%, 40년 후 156%로 예상한다.

꼭 필요하다면 빚이라도 내는 게 맞다. 하지만 갚을 사람에게 빚을 내도 좋을지 정도는 물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는 50대 이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자랐고,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 지난달 진행한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여론조사에서 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세금을 추가로 부담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20대의 60%, 30대의 55%가 없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남성의 72%, 30대 남성의 58%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씨를 빌려다 뿌릴 테니 네가 나중에 수확해서 갚으라고 미룰 상황이 아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사회복지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달 8일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는 440억 유로(73조원) 긴축 예산을 내놓으며 “미래 세대를 위해 재정 파국을 막으려면 지출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총리는 사임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닥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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