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지금 저성장 고착화, 청년 실업, 지역소멸, 디지털 전환 지연, 인재유출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위기의 뿌리는 다층적이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혁신의 부재'다. 그리고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존재는 바로 벤처와 스타트업이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단이 필요하다. 단순한 산업정책이나 일자리 대책의 보조 수단이 아닌, 국가 경제정책의 중심축으로서 벤처를 다루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벤처기업법' 제정과 코스닥 출범으로 시작된 한국 벤처생태계는 지난 25년간 양적 팽창을 거듭해왔다. 2024년 말 기준으로 벤처기업 수는 3만8216개사에 달하며, 이들이 창출한 매출은 총 242조원으로 재계 순위 3위에 해당한다. 고용규모 역시 93만5000명으로, 4대 그룹 전체 고용 규모를 상회한다. 특히 청년 고용 비율이 51%에 달한다는 점은 눈에 띈다. 이는 벤처가 단순히 기업 성장이 아니라, 청년 삶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벤처생태계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기술창업은 3년 연속 감소 중이며,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는 2년 연속 줄고 있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로 인해 자금 유입은 줄었고, 회수시장의 위축은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는다. 2023년 기준, 국내 스타트업 M&A는 단 32건에 불과했으며, 이는 미국의 20분의 1 수준이다. 규제는 여전히 강고하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 중 절반은 한국에선 법적으로 사업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AI, 디지털헬스케어, 리걸테크, 공유경제 등 신산업은 제도에 발이 묶여 있고, 플랫폼과 전문직 단체 간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가 경제정책의 최우선 어젠다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적 절박함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보다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으며, 제조업 중심 전통 산업은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 반면에 벤처는 무형자산과 기술, 인재, 모험자본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이들은 글로벌 경쟁의 전면에 서 있으며, 지금 이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새 정부에 바란다. 첫째, 공공기금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68개 법정기금 5%를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은 이미 제안됐다. 전체 운용규모 1000조원 중 5%만으로도 연간 50조원 이상의 민간 주도형 혁신생태계 자금이 확보될 수 있다. 둘째, 회수시장과 세제 인센티브를 보완해야 한다. 비상장 주식 양도차익 비과세, 세컨더리 펀드 육성, 코스닥 상장 규제 완화 등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라. 셋째,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사전 규제'가 아니라 '사후 규제'로 전환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다. 벤처가 자율성과 속도를 유지하면서도 우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제도의 유연화, 스톡옵션 과세 특례, 외국인 비자 요건 완화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벤처는 단순한 산업군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며, 청년의 희망이고, 혁신의 유일한 파트너다. 더 이상 '벤처 붐'이라는 말로 치장하지 말고, 실질적 국가전략으로 삼아야 할 때다.
전화성 초기투자AC협회장·씨엔티테크 대표이사 glory@cnt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