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면 살찐다?…한국인 괴롭히는 불면증 극복하려면 [건강+]

2025-03-03

잠 못 자면 면역력 ‘비만’ 수준으로 떨어져

한국인, OECD국 중 수면시간 가장 짧아

최근 5년간 수면장애 환자 24% 증가

“수면에 대한 강박, 되레 불면증 악화”

35세 직장인 김모씨는 대인관계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최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늦은 퇴근으로 야식을 먹거나 불규칙한 수면 패턴까지 더해지면서 3개월째 수면 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수면 시간이 부족하고 겨우 잠에 들어도 숙면을 취하지 못한 지 오래됐다”며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 감기를 계속 달고 사는데 예전처럼 먹어도 살이 잘 찌는 것 같아 큰일”이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면역 체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젊고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하루만 잠을 잘 못 자면 면역 체계가 비만 환자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나왔다.

3일 국제 면역학 저널(Journal of Immunology)에 따르면, 쿠웨이트 다스만 당뇨병 연구소는 수면 부족과 면역 세포 프로필의 변화를 분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해 이 같은 결과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다양한 체질량지수(BMI)의 성인 참가자 237명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혈액 샘플을 채취해 단핵구(單核球)의 수치 증감과 염증 관련 지표를 분석했다.

단핵구는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유형 중 하나로, 백혈병과 같은 악성 혈액 종양이나 만성적인 감염 증상이 있을 때 수치가 증가한다.

연구 결과 비만인 참가자들은 정상체중의 참가자들보다 수면의 질이 현저히 낮았고 단핵구의 수치는 높았다.

이후 연구팀은 정상체중인 5명을 추가 분석했다. 이들은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는데, 참가자들의 혈액에서 단핵구 및 염증 수치가 증가했다.

이는 비만 환자의 혈액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유사했다. 정상체중인 사람이 하룻밤이라도 잠을 못 자면 면역 체계가 비만인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약해진다는 의미다.

수면 부족이 면역력 저하를 초래해 염증 유발과 만성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학교 연구팀이 성인 153명을 대상으로 수면 패턴과 감기 바이러스 노출 후 감염률 간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하루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인 경우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했을 때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이 3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자느냐에 따라 백신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저명 학술지인 란셋(The Lancet)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한국은 주요국 가운데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1분으로 OECD 평균(8시간 27분)보다 약 30분 부족했다.

해당 통계에는 수면 시간이 긴 영·유아와 청소년이 포함돼 있어 성인의 실제 평균 수면 시간은 이보다 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면 장애 등을 호소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9년 99만명에서 2023년 124만명으로 24% 증가했다. 수면장애로 인한 총 진료비도 2019년 2075억원에서 2023년 3227억원으로 55% 늘어났다.

수면 장애의 원인으로는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스트레스 및 불안·우울증,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코르티솔 등 다양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로 인해 불면증이 유발된다. 잠을 못 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다시 불면증을 일으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수면을 취하기 위해 일정 시간에 잠에 들고 일어나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기 전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할 것을 강조했다.

또 침실 환경을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하며, 필요할 경우 커튼이나 안대, 귀마개를 활용하는 등 수면 위생을 지키는 것도 좋다. 잠이 안 올 땐 억지로 잠에 들려고 하는 것보단 침대를 벗어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이승훈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 제한 요법’은 침대를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15~20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서 나와 활동하다가 졸릴 때 다시 눕거나 아침에 깬 후에도 침대에 오래 머물지 말고 즉시 활동을 시작하면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수면과 강하게 연결돼 수면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면 부족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불면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 교수는 “한두 시간만 잠이 안 와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다”며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해 수면에 대한 강박이 생기면 오히려 불면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부담감을 줄이고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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