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전이(相轉移)란 글자 그대로 '얼굴을 바꾼다는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상전이는 상태가 바뀌는 것이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것,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는 것이다. 산업에서의 상전이란 생태계의 룰이 바뀌는 것이다. 예로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의 출현은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며 우리의 삶을 통째로 상전이 시켰다.
정확히 20년 전, 일본은 인구구조의 상전이를 맞이했다.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한 세대를 풍미했던 단카이(?塊)세대의 본격 은퇴가 이뤄지며 제조업은 몰락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127만개 기업 도산, 670만명의 실직을 예상했고, 실제 10년간 80만개 중소기업이 폐업하며 '메이드 인 재팬'의 장대한 서사는 페이지를 덮었다.
누군가의 종말은 누군가의 서막이 된다. 무너진 공급망의 빈틈을 한국이 전광석화처럼 메웠다. 한국 경제의 4대 성장엔진인 자동차, 조선, 반도체, 디스플레이가 세계시장을 석권하였고, 부품·소재·장비 산업은 글로벌 밸류체인의 핵심적 위치로 도약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대한민국 비상의 20년이었다.
지난 2024년 말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속도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2040년이 되면 전 세계 최고령국가인 일본을 넘어설 전망이다. 급속한 인구구조의 변화는 중소기업에 먼저 도달한다. 중소기업 CEO의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어섰고, 후계자 부재 비율은 27.5%에 달한다. 후계자를 찾지 못해 매각 혹은 폐업을 고려 중인 기업이 21만개에 달한다.
중소기업 생태계의 몰락은 대기업 몰락의 트리거가 된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은 약 2만~3만개이고 대부분은 중소기업에서 생산된다. 즉, 모세혈관이 막히면, 심장에 피가 돌지 않는다. 일본으로 돌아가보자, 글로벌 1위 가전 기업이었던 소니는 게임·콘텐츠회사로 전락했다. 도시바는 파산보호 신청 후 현재는 기업해체 수준이다. 샤프는 대만 폭스콘에 매각되었고, 한때 계열사 1000개가 넘던 히타치는 정보기술(IT)인프라 사업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국가적 재난사고가 터질 때마다 뉴스 속 익숙한 장면이 반복된다. 참사 현장을 찾은 대통령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다. 이런 풍경은 왠지 기시감(旣視感)을 준다. 지난 사고 때도, 그 전 사고 때도 똑같지 않았던가,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대구지하철 참사 등 국민안전처가 신설되고, 법·제도가 정비됐지만 944명의 어린 생명과 무고한 시민은 돌아오지 않았다.
새정부 출범 후 각계의 요구가 많다. 대통령도 연일 동분서주한다.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고, 인공지능(AI)을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삼는다고 한다. 첨단산업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간과하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향후 20년, 대한민국은 초국가적 재난사태에 직면할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위기가 아닌 국가 존재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상전이 현상일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안 심으면 안 난다. 경기 끝내고 심판 불러오는 형국은 막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이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 코스닥 10대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제로 채택되기도 했다. 2020년 퇴임 후 대형로펌 M&A팀 고문을 역임했고 현재 세계 첫 디지털 M&A플랫폼 피봇브릿지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