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그리 드럽겐 안한다” 하나회 3시간 만에 박살 낸 YS

2024-12-02

시대탐구 1990년대

장관, 군인들은 사직을 우예 합니꺼?

사표는 따로 없지만 통수권자의 인사 명령엔 복종합니다.

문민정부 출범 11일째인 1993년 3월 8일. 김영삼(YS) 대통령은 아침부터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 관저로 불렀다(『김영삼 대통령 회고록』). 후루룩 아침을 먹은 두 사람은 집무실로 갔다. 대통령과 장관의 극비. 3시간 뒤 YS는 김진영(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기무사령관을 전격 해임했다. 느닷없는 해임 통보에 두 사람은 공식 일정을 수행하다 갑자기 옷을 벗었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후계 그룹의 선두였던 김진영과 군 정보 책임자인 서완수는 하나회 실세였다. 이들의 후임으로는 하나회가 아닌 김동진(육사 17기) 연합사 부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으로, 김도윤(육사 17기) 기무사 참모장이 기무사령관으로 발령났다. 발표 직후 임명장을 주고, 취임식을 진행했다. 행여 모를 군부의 반발을 의식해서였다.

통일원 차관을 지낸 김석우 당시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군이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광석화처럼 집행한 것”이라며 “청와대 비서진도 몰랐던 일”이라고 말했다. 군부는 충격에 휩싸였고, 국민은 환호했다. 하나회 척결은 군정 종식의 증표였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수석비서관 회의에 나타난 YS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 발언은 훗날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김석우 당시 비서관은 “진짜 깜짝 놀랐지만 비서진들은 모두 대통령을 지지했다”며 “YS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YS는 정말 용기 있는 지도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4월 2일엔 기무사와 함께 ‘실세 3사’인 수방사·특전사 사령관을 교체했다. 이어 12·12 사태 관련 고위 장성 해임 결정 등 중·소장급 전격 인사가 이어졌다. 4개월간 하나회 척결이라는 뚜렷한 목표 아래 군 인사가 휘몰아쳤다. 이때 장성 50여 명, 장교 1000여 명이 옷을 벗었다(『대통령과 국가경영』).

인사 규모가 워낙 커 임명식에서 대통령이 직접 달아줘야 하는 계급장(별)이 부족했고, 급한 대로 현장에 있는 장성들의 계급장을 떼어 달아줄 정도였다. 이후 하나회 출신들은 영관급 이하까지 진급과 직위에서 배제했다. 하나회 척결의 마무리 수순이었다.

그러나 잔존한 하나회 세력들의 불만은 쌓여 갔다. 문민정부는 고위 간부급 장교들을 예의주시했다. 1979년 12·12 주범도 전두환·노태우 소장을 비롯한 장세동·허화평·허삼수 등 영관급 장교들이었기 때문. 그리고 1년이 지난 초가을 어느 날. 군부에선 커다란 폭풍의 씨앗이 감지됐다. 미처 쳐내지 못한 하나회 일부가 쿠데타를 기도하고 있던 것이다.주동자로 이름을 올린 장성과 영관급 장교만 10여 명에 달했는데 이를 안 YS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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